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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 천상병 시인의 고택이 있는거 아세요?

천상병 시인의 집에서 ‘인생’과 '우주의 근원'을 배우다

2013.12.18(수) 00:46:35점생이(uiweyoi3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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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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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란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천상병 시인의 작품 <귀천>입니다.
시에서도 읽히듯, 참 소박하고 정감 어린 분.
천상병 시인의 고택이 안면도에 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 많을텐데 이제 우리 충남도민들이라도 이런 사실을 주변에 알려 시인을 사랑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고향은 태안이 아닌데 어떻게 이곳에 오시게 됐냐구요?
그 과정을 설명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가 늘 개발이라는 것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신적인 어떤 소중한 것들을 너무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집은 원래 경기도 의정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4년 9월에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 있는 시인의 집이 아파트 건설 때문에 없어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현재 태안의 천상병 시인의 집 바로 옆에는 그림처럼 예쁜 펜션이 하나 있는데 이 펜션의 주인어른이 천상병 시인의 지인이셨다고 합니다.

시인의 섬

▲ 천상병 시인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산 입구.


소박하고 아담한 천상병 시인의 집

▲ 소박하고 아담한 천상병 시인의 집


천상병 시인은...

▲ 천상병 시인은...
 


고택 밑에서...

▲ 고택 밑에서...


그런데 시인의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다급하게 이곳 태안으로 전화를 걸어 집이 허물어지기 전에 부랴부랴 집의 원형을 살려 이곳으로 옮겨 지은거라 합니다.
그래서 현재 이곳 시인의 집이 있는 안면읍 중장리는 ‘시인의 섬’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펜션을 운영하시는 분이 시인의 고택을 관리하면서 계신다고 합니다.
 

집앞 장독대

▲ 집앞 장독대


연탄 아궁이와 양은 솥

▲ 연탄 아궁이와 양은 솥


방 내부

▲ 방 내부


시인이 쓰던 앉은뱅이 책상

▲ 시인이 쓰던 앉은뱅이 책상


시인의 책과 책꽂이(?)

▲ 시인의 책과 책꽂이(?)


방 한켠에 놓여있는 사진과 액자

▲ 방 한켠에 놓여있는 사진과 액자


시인의 사진

▲ 시인의 사진


너무 소박하고 단촐한 방

▲ 너무 소박하고 단촐한 방


시인의 생전 모습

▲ 시인의 생전 모습


집 안에는 천상병 시인이 직접 쓰던 물품들과 책, 사진이 소박하게 안치돼 시인이 머물렀던 집안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항아리들이 정갈하게 놓여있고요.
 

시인의 집 바로 아래에 만들어 놓은 갤러리

▲ 시인의 집 바로 아래에 만들어 놓은 갤러리


갤러리 내부를 상짝 엿보니...

▲ 갤러리 내부를 살짝 엿보니...


변기 뚜껑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 변기 뚜껑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고택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돌아가신 중광 스님과 김점선 화백, 소설가 이외수 선생등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말에는 가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독주회가 열리기도 한다는군요.
 

방 안의 창문. 마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 방 안의 창문. 마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소박한 창문

▲ 소박한 쪽문


천상병 시인의 연보를 잠깐 볼까요.
시인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고 원적지는 경상남도 마산이라고 합니다. 최종 학력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셨습니다.
이미 중학교때부터 시를 써서 두각을 나타냈고,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죠,
다 알려진 일이지만 1967년 억울하게도 중앙정보부에 의해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막걸리값으로 500원, 1000원씩 받아 썼던 돈이 간첩에게 받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다는군요.
참 어처구니 없는 세상이었네요. 그 덕분에 천상병 시인 자신은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는데 결국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습니다.
 

처마의 고드름

▲ 처마의 고드름


앞마당의 벤치

▲ 앞마당의 벤치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시인은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고택을 관리하며 그 옆에서 모종인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

▲ 천상병 시인의 고택을 관리하며 그 옆에서 모종인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


현재 펜션을 운영하면서 시인의 고택을 지키고 계신분은 천상병 시인의 오랜 지기인 모종인 시인과 부인이십니다.
모종인 시인은 원래 미술을 전공했는데 시를 좋아해서 천상병 시인과 부인 목순옥 여사와는 친부모와 친자식처럼 지냈다고 하네요.

한국 현대문학에서 기인으로 통했던 서정시인 천상병의 예술혼을 이어가는 시인의 섬이 휴양 관광지로만 알려 졌던 안면도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집 :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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