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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현충사 전시실 유화도 보고 방학때 어린이 충무공학교 참여하세요

2013.12.06(금) 04:37:45최순옥(didrnlwk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두말할 필요없는 민족영웅이십니다.
어릴때부터 교과서나 만화책 혹은 기타 교재에서 충무공에 관한 그림을 간간히 보았을 것입니다.

어쩌다 한번씩 보았던 그 그림들.
최근에 현충사에 가서 소년시절부터 임진왜란이 끝날때까지 충무공의 일대기를 유화로 그린 그림 모두를 촬영했습니다.
 
지금부터 순서대로 볼까요.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충무공은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즐겨했다고 합니다.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매번 언제나 대장이 되어 손위 아이들까지도 잘 이끌어 나가는 역량을 발휘했다죠. 공께서는 일찍부터 호걸스럽고 불의에 굽히지 않는 천성을 가지고 계셨다 합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첫 무과시험 낙방.
충무공의 나이 28세때 처음으로 도전한 무사 선발 과거시험에서 말을 달리다가 말이 갑자기 거꾸러진 탓으로 공의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답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한발로 일어서서 곁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 부상한 다리를 처맨 다음 다시 말을 달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용기와 기백을 감탄케 하였다지요.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여진족을 무찌름.
녹둔도의 본 이름은 '사슴섬' 으로서 두만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목에 있는 섬입니다. 충무공이 녹둔도 둔전관으로 있던 어느날 오랑캐들이 떼지어 쳐들어왔을때 공은 겨우 1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리떼 같은 오랑캐들을 물리쳤다 합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거북선 건조.
충무공은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로 내려간 직후, 즉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부터 거북선을 구상하여 그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답니다. "4월12일,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에서 지자, 현자를(함포) 쏘아 보았다." 이 글로 보아 4월13일에 왜군이 부산진을 습격하였을때는 이미 충무공께서는 전쟁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부산해전
"부산은 적의 근거지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소굴을 없애버려야만 적의 간담을 꺾을수 있다."
이것은 충무공의 주장이었습니다. 1592년7월에 거둔 한산대첩에 이어 9월1일 새벽에 충무공은 전 함대 166척을 이끌고 부산앞바다에 몰려있던 470여척의 왜선중 100여척을 격파했습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삼도수군통제사 시절 한산도 생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 한산섬 시조는 문무를 겸비한 충무공의 가장 널리 알려진 문학작품입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충무공의 효성
충무공은 전쟁중에도 어느 날이나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잊지 못했습니다. 난중에 공이 어머님을 찾아 겨우 하룻밤을 지내고 난 이튿날 아침에 하직을 아뢰었을때, 어머님은 "잘 가거라. 어서 가서 나라의 욕됨을 갚아라"하고 조금도 슬픈 빛을 띠지 않으셨다 합니다.
실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었습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죄인의 몸
1597년 2월26일, 억울한 죄수의 누명을 쓰고 서울로 잡혀가는 통제사 이순신 장군. 왜적으로부터 나라와 겨레를 구하고도 왜적의 간계와 조정이 어지러움에 몰려 죄 없는 죄수가 된 통제사 충무공은 옥에 갇힌지 28일만에 백의 종군의 명을 받고 계급없는 군졸로서 다시 싸움터로 나갑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통제사 재임명후 명량해전
'울돌목'이라 부르는 명량은 전남 해남군의 서쪽 우수영과 진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입니다. 1597년 9월16일 충무공은 울둘목의 좁은 지형과 물살이 거센 밀물 썰물을 이용한 전술을 펼칩니다.
충무공은 당시 피난시키는 민간 선박을 우리의 전투함으로 꾸미고 소수의 군사를 시켜 산 허리를 돌게 함으로써 많은 병력이 있는것처럼 꾸밉니다.
이런 전술로 불과 13척의 배를 가지고 130여척이나 되는 왜선을 섬멸하였습니다.
 
이상 현재 현충사 기념관 전시실에 걸려 있는 장군의 일대기를 표현한 유화 모두를 보았습니다.

유화로 생생하게 보는 충무공 일대기 사진

그렇게 오로지 나라를 구하는 일에만 진력하던 충무공께서는 1598년 11월19일(선조31년) 임진왜란 최후의 노량해전에서 본국으로 도주하던 왜군을 단 1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시며 선전을 독려하시다가 왜군이 쏜 유탄에 맞아 53세의 일기로 장렬하게 전사 하셨습니다.
 
 

현충사 전기실에 있는 깃발

▲ 현충사 전기실에 있는 조선 수군의 깃발
 

충무공의 장검

▲ 충무공의 장검


여기서 충무공과 왜군에 관한 숨길수 없는 재미있는 기록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도도 다카토라 : 옥포 해전 , 어란진 , 벽파진 해전,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
- 도쿠이 미치토시 : 율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 자결
- 구키 요시타카 :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
- 후쿠시마 마사노리 : 당항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
- 시마즈 요시히로 : 노량해전에서 휘하 수군 궤멸,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
- 고니시 유키나가 : 노량해전에서 휘하 수군 궤멸 ,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
- 와키자카 야스하루 :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을 상대로 승리. 합포, 사천, 한산도 , 웅천 ,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 이후 오늘날까지 그의 후손들은 매년 이순신장군의 전사일에 맞춰 한국을 방문해 충무공을 기리고 있다고 함.
- 모리 테루모토 : 부산진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
- 구루시마 미치후사 :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배, 전사
 
이제 얼마 안있으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됩니다.
 

주말에 현충사를 찾은 학생을

▲ 주말에 현충사를 찾은 학생을


방학을 맞이하면 엄마아빠가 아이들 손잡고 현충사에 들러 이 유화도 보면서 장군의 나라사랑과 기개와 용기를 한번 가르쳐 주세요.

또한 매주 토요일에는 어린이 충무공학교가 열리니 아이들과 함께 이런것도 참여해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그동안 철없던 아이들이 훌쩍 크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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