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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2013.08.30(금) 16:12:44이영희(dkfmqktlek@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과 부여 박물관 모르시는 분들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은 이런 국보나 보물 등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박물관 뿐만 아니라 대학 박물관과 지방 박물관, 그리고 개인 박물관도 있습니다.

그 안에도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데 개인 박물관이다 보니 잘 모르시고 지나치는 분들 계십니다.

온양 민속박물관은 개인 박물관이면서 독특한 문화재와 잘 조명된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 온양민속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박물관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민속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 전시하여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되살리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일생 시리즈가 전시된 제1 전시실

▲ 한국인의 일생 시리즈가 전시된 제1 전시실


25,000평의 대지와 총 1,600평의 전시관 안에 조상의 숨결과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17,000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은 한국인의 일생을 소개한 제1전시실, 농업, 길쌈, 사냥 등의 생업을 소개한 제2전시실, 민속공예품을 모은 제3전시실과 함께 민화를 전시한 특별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온양민속박물관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잘 꾸며 한눈에 알수 있도록 한 우리의 소중한 삶과 양식, 문화자료와 유산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그 시리즈로서 오늘은 과거 양반과 상인으로 구분돼 있던 신분서열 시대의 한국인의 일생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목판활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우리의 탈춤, 과거시험의 모든것, 여성들이 가지고 다닌 은장도, 우리의 복식(의류의 역사), 한국인의 평생도, 갑주와 갑주함, 거북흉배, 사당형 감실, 금고, 용문촛대 등을 소개코자 합니다.
 
당시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양반과 상인, 즉 더 정확하게는 사농공상으로 신분서열이 매겨져 있습니다. 양반의 자제들은 성인이 되어 과거시험을 치르고 관직에 나가기 의해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지만 그 나머지 농공상 아이들은 대개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먼저 아이들이 태어나면 이렇게 여자 아이는 다소곳하게 그리고 널뛰기 같은 놀이를 하며 자랍니다.
남자아이들은 연날리기 같은 것을 하면서 놉니다. 지금처럼 여자아이들이 핫팬츠를 입거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장인의 아이들은 장인의 길로 가고, 상인의 아이들은 또 상인의 길로 접어들어 함께 장사를 하고 나섭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이어서 성인이 되어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를 받고 초립도 씁니다.
양반의 자제는 선비가 되어 거드름을 피우며 삽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해서 중앙 관직에 나가거나 머리에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수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평생 양반으로 지냅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반면에 농민은 평생 농사만 짓습니다. 고단한 농삿일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먹거리가 중요하던 시절이어서 공인이나 상인보다는 덜 천대를 받았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그와 반대로 공인(장인)은 오늘날 기술분야에서 너무 중요한 역할로 인정받는 것에 비해 당시에는 무척 많은 멸시를 받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해마다 1등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그 직업에 맞는 일을 하고 장사를 하는 상인 역시 같은 일만 합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사농공상의 신분서열에 맞게 일을 하면서 성인이 된 사람들은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합니다. 초호화 웨딩홀에서 서양식으로 하는 오늘날의 결혼식이 아니라 참 정겹고 가슴 따스했던 전통혼례, 기억하십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죄다 구경 나온 가운데 함 팔러 가고 사주단지 받던 그때의 결혼식. 부부는 그렇게 행복하게 삽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나이 61세가 되면 환갑잔치를 했습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환갑잔치를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오래전의 풍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워낙 평균수명이 길어져 지금은 대개 7순잔치로 바뀌었죠.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제1화 - 한국인의 일생> 사진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고 늙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피할수 없는 것입니다. 본인의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본인도 때가 되면 세상을 뜹니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그땐 이렇게 상복을 갈아입고 문상객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상여에 고인을 모시고 행상이 나갑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일생을 짤막하게 돌아 보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불과 150년전까지의 일입니다. 그 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요.
 
그래도 우리가 소중하게 기억하는 전통혼례 같은건 오늘날에도 버리지 않고 아끼며 계속 전승 발전시켜야 하는 문화유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전통혼례를 한번 권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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