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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보다 아들 묘가 훨씬 호화로와... 그 이유는?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고조부 묘에 얽힌 사연...조선시대 예법과 요즘 젊은이

2013.08.23(금) 07:50:45권순도(djshsjshsywy@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똥 물에도 파도가 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위계질서와 상하 관계가 확실한 군대의 계급사회 특성상 아래 위를 분명히 구분짓고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재미있는 표현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보면 정말 이 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버릇 없고 아래 위를 몰라보기 때문입니다.

 말도 함부로 하고, 어른들 공경할 줄도 모르고, 예의범절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우리네 전통사상에서 볼때 신분과 예의, 격식, 법도가 얼마나 칼 같았는지를 좀 실제적인 예를 들어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진정 똥물에도 파도가 분명했던 이 사례를 보면 “아하, 정말 그랬구나!”하며 깨닫는게 있을 것입니다.

 충남 예산의 김정희 고택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거기에 화순옹주 홍문도 있구요. 화순옹주는 영조대왕의 둘째딸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정희 고택에 갔다가 이 두가지만 보고 오셨다면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김정희 고택 왼쪽에는 화순옹주와 월성위 김한신의 합장묘가 있고, 김정희 고택에서 오른쪽으로 약 300m쯤 떨어진 저 건너편에는 김흥경이라는 분의 묘가 또 있습니다.

 김한신은 김정희의 증조부이고, 김흥경은 김정희의 고조부입니다. 즉 서열상 김흥경이 웃어른이십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묘를 직접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설명하자면 아들인 김한신의 묘가 아버지인 김흥경의 묘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호화롭게 치장 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의 묘를 보겠습니다.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

▲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
 

문인석, 망주석, 곡장, 호석까지 갖춘 호화 묘

▲ 문인석, 망주석, 곡장, 호석까지 갖춘 호화 묘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딸과 결혼했습니다. 그이가 화순옹주이고, 결국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사위이자 부마가 되는 셈입니다.

 왕의 사위와 공주가 함께 모셔진 합장묘이다 보니 묘에는 돌담장이 둘러있고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 곡장(曲墻)에 호석까지 구비하였습니다. 묘가 상당히 규모있고 위세가 느껴집니다.

영조의 어필로 쓴 묘비

▲ 영조의 어필로 쓴 묘비


 비문 또한 영조의 어필이 새겨져 있고 묘막은 무려 53칸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소실되었다고는 하나 그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알수 있습니다.

 김한신은 벼슬이 수록대부 오위도총관까지였는데 그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자 화순옹주는 식음을 전폐하여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본 김한신 화순옹주 합장묘

▲ 왼쪽 측면에서 본 김한신 화순옹주 합장묘
 

뒤에서 마을쪽으로 본 묘

▲ 뒤에서 마을쪽으로 본 묘. 상당한 위세가 느껴집니다.
 

화순옹주 홍문

▲ 화순옹주 홍문


 이후 화순옹주의 열녀 정문이 세워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남은 화순옹주 홍문입니다.

 약 200여 평의 대지 위에 낮은 담장을 두르고 출입문의 정면에 홍문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의 오른쪽 칸에 문을 내었고 문의 정면에 홍살을 세우고 문 위에는 붉은 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상이 김한신과 화순옹주에 대한 이야기이며 합장묘의 상태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김한신의 아버지이자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조부인 김흥경의 묘를 보겠습니다.

 김흥경은 김한신의 아버지이니 그보다 더 크고 위세있게 묘가 만들어져 있어야 할듯 합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흥경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경종 때 한성부윤이었고 영의정까지 올랐던 인물입니다. 영의정이라면 지금의 관직으로는 대통령 바로 아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2인자 직책입니다.

김흥경의 소박한 묘

▲ 김흥경의 소박한 묘
 

봉분만 하나 덩그러니.

▲ 봉분만 하나 덩그러니.
 

묘에서 80m쯤 떨어진 앞쪽에 있는 김흥경 묘의 묘비

▲ 묘에서 80m쯤 떨어진 앞쪽에 있는 김흥경 묘의 묘비


 그런데 관직과 벼슬에 대한 위계가 분명한 조선 사회에서 놀랍게도 김흥경의 묘는 그의 아들인 김한신의 묘보다 훨씬 소박하고 단촐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무덤은 달랑 봉분 하나와 비석뿐입니다.
 그러나 아들인 김한신은 곡장(曲墻)에 호석까지 갖추었죠.

 이게 웬일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한신은 공주와 결혼한 왕의 사위이기 때문입니다. 왕가의 예법상 그의 아버지인 김흥경보다 신분 서열이 높기 때문인 것이죠.
 이만큼 조선시대의 위계는 함부로 깨뜨릴 수 없는 것이었고 분명한 서열적 지위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 두사람의 묘를 보면서 “과연 똥물에도 파도가 있는 법”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표현이야 우스꽝스럽지만 나름대로 전해지는 의미가 분명한 말인듯 합니다.

 찬물도 아래 위가 있는 법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 그런거 너무 모르고 삽니다. 위 아래 제대로 볼줄 아는 예법이 잘 존중되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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