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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조선까지 6명의 충신을 모신 부여 의열사

2013.08.23(금) 06:39:09강석훈(rkdtjrgns3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역대 충신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장의 사당이 많습니다. 이런 사당이나 비각은 대개 특정한 사람 1인 또는 극히 드물게 2~3명의 충신을 모시고 있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부여에는 지역의 충신 6명을 모시고 있는 의열사라는 사당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이곳에서 모시고 있는 충신은 백제시대의 성충, 흥수, 계백장군 이렇게 3명과 고려후기의 충신 이존오, 조선시대 선조때 선비 정택뢰, 인조때 문신 황일호 이렇게 3명을 포함해 모두 여섯명의 충신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부여에서는 백제시대의 충성스런 지역 인물을 비롯해 시대가 흐르면서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유명 선비들을 모심으로써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 이분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의열사 외삼문

▲ 의열사 외삼문
 

의열사비 설명문

▲ 의열사 설명
 


 이 의열사는 선조때 세워진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사우로써 조선시대 부여 현감이던 홍가신이 백제와 고려충신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고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고을의 어른들과 제사를 모신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부여 현감이었던 홍가신이 선대의 인물을 제대로 알아본 것이지요. 그 내용을 임금에게 보고하자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 의열사라는 현판을 하사하고 그 충정이 길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조선 선조때 선비 정택뢰와 인조때 문신 황일호를 추가로 모셔 여섯명이 되었는데 해마다 봄 가을에 제향을 지내고 있습니다.

의열사 사당

▲ 의열사 사당
 

사당의 편액

▲ 사당의 편액

 이 여섯 충신 가운데 백제의 성충과 흥수는 사치와 유흥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군사력 강화를 소홀히 하는 의자왕에게 외적의 침입을 경고하였던 인물들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투옥 당하고 심지어 유배까지 갔던 백제의 마지막 충신이었죠.
 그리고 계백 장군은 설명이 필요치 않은 분입니다.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에 몰려드는 순간 적의 손에서 유린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 모두의 목숨을 거둔 후 5000명의 백제의 마지막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 나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명장입니다.

넓게 전경을 본 의열사

▲ 넓게 전경을 본 의열사


 또한, 고려후기의 충신 이존오는 신돈의 그릇된 정사 개입을 왕에게 고하며 탄핵할 것을 주청하다가 벼슬을 잃기까지 했으나 그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충신입니다.

 정택뢰는 조선시대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한 이원익을 변호하다 유배된 충신입니다.

 황일호는 또 남다른 충신이면서 아깝게 목숨을 잃은 분입니다.

 이분은 조선 광해군∼인조 때의 문신으로써 운봉현감을 지내고 인조때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그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 수비에 공을 세웠습니다. 병자호란 직후에는 다시는 그같은 전란을 겪지 않기 위해 청나라 태종이 명나라를 치는 기회에 청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명나라를 도우려다 청나라 병사에게 단서를 잡혀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참 기개 넘치는 분입니다.

의열사 비

▲ 의열사 비


 현재 의열사 앞에는 의열사비가 세워져 있고 이 비에는 의열사를 세운 과정과 이곳에 모신 인물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여에서는 부여를 빛낸 충신들의 뜻과 넋을 기리고자 이곳에서 봄 가을에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그 충절의 의미를 더해 부여정신으로 승화 계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의열사는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이었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의열사기’를 지었고 서애 유성룡이 ‘의열사 관선당기(관선당 : 의열사에 모셔진 분들의 충의 정신을 익히는 강당)를 썼을 정도로 의미가 크고 비중 있는 서원이었습니다.

관선당

▲ 관선당. 이곳은 의열사에 배향된 인물들의 충의 정신을 익히는 강당이었습니다


  지금 있는 의열사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었는데 1971년에 현 남영공원으로 옮긴 것이라 하네요.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이고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형태의 맞배지붕으로 지었습니다.

 말들도 많고 혼란스럽고 혼탁한 요즘 세태에, 이렇게 사리사욕 버리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들만을 위해 충성을 다한 6분의 사당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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