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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금산 보석사에 만난 풍경들

2013.08.19(월) 19:21:42조연용(whdydtnr7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름휴가의 끝자락을 붙잡고 뒹굴다가 휴가의 흔적들을 주워 담는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실제 휴가는 딱 하루였지만 결론은 4일이나 놀은 셈이다. 그리고 오늘 그 휴가의 끝자락을 붙잡아 퍼즐을 맞춰본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통을 받고 급하게 뛰어나갔다가 계곡이라고 말 하기도 좀 쑥쓰러운 작은 개울에서 발 담그고 놀다가 젖은 옷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에 위치한 보석사에 들렀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보석사를 찾은 것이라서 먼저 전나무숲길을 따라 은행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은행나무보다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영규대사의 의병승장비였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영규대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탄환한 인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산 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함께 순절했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 전나무 숲을 조금 걸었을때 천백살을 훌쩍 넘긴 할머니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겨줬다. 여기서 잠시 스마트폰을 꺼내 학습모드 진입....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는 키 34m, 가슴높이 둘레 10.72m이고, 나이는 약 1,100년으로 추정한다. 해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대신제(大神祭)가 열리는 날에는 은행나무에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또 전설에 의하면 나라에 국난이 있을때마다 은행나무가 울음으로서 미리 국난을 예고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은행나무가 있는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때 조구대사가 창건(886년)한 사찰이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앞산에서 금을 캐서 불상을 주조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또 은행나무는 조구대사가 다섯 명의 제자와 함께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로 합쳐져서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은행나무 여섯 그루는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여섯 가지 방법, 즉 육바라밀을 상징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바라밀을 의미한다고 한다. 엄청난 세월을 떠 받들고 서 있는 은행나무의 위력 앞에서 마음마저 겸손해졌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은행나무에 대한 다양한 전설을 뒤로하고 다시 목교를 따라 보석사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대웅전으로 가는 목표가 이뻐도 너무 이쁘다.

목교를 따라 걷다보니 불경스럽게도 꼭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과 춘향이가 몰래 데이트를 즐기던 다리 같다는 생각이 살짝스쳐간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은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이기에 마음의 옷고름을 고처메고 봉황문으로 들어섰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목교와 대웅전 앞마당을 이어주는 봉황문을 빠져 나오자마자 봉황이 지키고 서 있는 약수가 보인다. 처음에는 약수 위에 왜 봉황이 앉아있을까 싶었는데 봉황과 봉황문이 짝을 이루고 있었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돌계단 위에 연꽃처럼 앉아있는 대웅전 앞에 우리보다 서너걸음 먼저 온 처사 한분이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무엇을 빌고 있었을까?

세속에서의 무거운 짐 다내려놓게 해 달라고 빌었을까? 아니면 고령 노모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을까? 그도 아님 이번에는 꼭 성공할테니 사업 자금 좀 조달해 달라고 빌었을까? 다양한 추측들이 스쳐간다. 아니다. 어쩌면 '나를 찾가가는 이정표를 알려달라고 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그런데 하얀 목백일홍이 눈에 뛴다. 흔히 목백일홍은 붉은색으로 피는 것이 많은데 흰색 목백일홍은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에 카메라에 담아본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하얀 고무신 두 켤레가 다소곳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인것 같다. 왠지 이렇게 정갈하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 저절로 득도할것 같은 것은 낭만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새벽 예불시간에 나래를 펼쳤을지도 모를 범종이 조용히 나래를 접고 있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절 마당에서 발견한 화덕.. 가스레인지 이전에 또는 곤로가 나오던 이전에 많이 쓰이던 화덕이다.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라 더 반갑다.

타다 만 장작이 화덕 아궁이에서 참선중이다. '나무아미타불' 겸손하게 합장하고 지나간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사찰 음식 맛을 결정해줄 장이 한 참 맛있게 익어가는 장독이 참 정겹다.


 

금을 캐어 창건했다는 보석사에서 만난 풍경들 사진



대웅전을 중심으로 금방 돌아나온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그네를 배웅한다.

우연히 발길 닿은 곳에서 만난 보석사... 그 이름에서부터 뭔가 강한 메세지를 전해준다. 그런데 마음에 여유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한 소식 전해 듣지 못한 채 보석사를 돌아나왔다.

어쩌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 어느 언저리쯤에서 다시 한번 보석사를 찾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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