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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아라메길에서 멋스런 양반가옥을 만나다

유기방·유상묵가옥 둘러보며 아름다운 봄 만끽

2012.05.14(월) 12:09:01쟈스민(mee010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산 아라메길을 걸었다.

 

서산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전국의 다양한 걷기 코스들이 있겠지만 서산 아라메길은 총 20.1Km에 이르는 총 6시간여가 소요되는 장거리 코스이다.

전 구간을 처음부터 걷는 것은 무리이다. 조금씩 구간을 나누어서 걷거나 주요 구간마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방법이 좋다.

 

  서산 아라메길 총 코스 : 20.1Km, 총 6시간여 소요

유기방가옥 -> 비자나무(0.1km) -> 선정묘(0.3km) -> 여미리미륵(0.5km) -> 유상묵가옥(0.8km) -> 전라산(1.7km)-> 역천탄성포장(1.0km) -> 운산교입구(2.7km) -> 삼거리(좌:3.5km) -> 미평교(4.7km) -> 쉰질바위앞(5.3km) -> 고풍터(5.5km) -> 용현계곡입구(6.8km) -> 미륵불(7.0km) -> 쥐바위, 인바위(7.2km) -> 마애삼존불상(7.4km) -> 방선암(7.6km) -> 보원사지터(8.9km) -> 용현자연휴양림매표소(10.0km) -> 삼거리(우:10.4km) -> 전망대입구삼거리(11.9km)-> 용현계곡정상(13.6km) -> 일락사(15.4km) -> 일락사주차장(하:16.0km) -> 황락저수지(16.7km) -> 해미읍성 동헌 앞(20.1km)

 

 

 

화사한 봄꽃이 서산 아라메길을 반갑게 맞이하니 길 떠나는 이 또한 설레기만 한다.

 

 

장승들과 화사한 봄꽃들이 피어난 길을 따라 유기방 가옥으로 먼저 향한다.

 

▲ 서산 아라메길, 유기방가옥

 

유기방가옥은 서산지역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현재 그 자손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다. 야산을 뒤로하고 'U'자형으로 토담을 두른 후 동측에 사랑채 공간과 서측에 안채공간을 토담으로 구분하였다.

 

 

안채는 'ㅡ'자형으로 부엌, 방, 대청마루, 건넛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앞으로 원래 중문채가 있었는데 1980년대에 헐어내고 현재의 목조주택을 건축하였다. 행랑채는 안채 좌측에 위치해 있고 중앙칸에 협문을 달아 외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굴뚝이 뒤로 흐르는 배수로 위를 지나도록 독특한 기법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뒷마당에는 석축 위로 장독대를 설치하여 장독마다 박석을 깔아 놓았다.

 

 

 

사랑채는 'ㄴ'자형으로 들문을 설치하여 필요시 사랑방에서 마루까지 한 공간으로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사랑채 앞에는 'ㅂ'자형 사랑채대문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기방가옥을 벗어나  비자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곳곳에 서산 아라메길을 표시하는 노랑 리본이 달려있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요즘 제철인 쑥은 비자나무로 향하는 길에 한가득이라 그 쑥향이 코끝을 진동하였다.

 

▲ 서산 여미리 비자나무

비자나무는 대체로 전라도의 백양산과 내장산에 자생하고 제주도에 대군락을 이루고 있고 중부지방 이북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나무로 그 수 또한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이 비자나무가 서산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마을 여미리 전주이씨,

 

속칭 예민이씨 가문의 이택(1651~1719)이 1675년 제주도의 비자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1982년 10월 15일 면나무로 지정되었는데 이 비자나무의 추정수령만도 약 330년, 둘레 246cm, 높이 20m이다.

 

 

비자나무를 빠져나와 선정묘로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선정묘로 향하는 길에는 유채꽃과 자주 헷갈리는 애기똥풀이 가득하고 텃밭에는 파가 자라고 있었다.

 

▲ 서산 아라메길, 선정묘

 

선정묘는 조선조 2대왕인 정종대왕의 제 4왕자인 선성군의 후손인 이창주가 이곳에 입향하면서 조선조말경 당초 경기도 파주지역에 있던 신성군 사당을 여미리 168번지에 이전 위패를 모시는데 매년 춘기에는 전국에 있는 후손들이 모여 제향한다고 한다.

 

 

제향을 모시지 않을 때는 이렇게 굳건히 닫혀져 있으나 낮은 기와 덕분에 사당을 살짝 엿볼수 있었다.서산에서는 부석면 강당리 소재 희안대군 사당인 승덕사와 함께 지방에서는 드물게 있는 왕자의 사당이라고 한다.

 

 

발걸음은 다시 여미리미륵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여미리미륵으로 향하는 길에는 발 아래 민들레가 한 가득이다.

 

▲ 서산 아라메길,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은 지방화된 양식을 보여주는데 높이 3.1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1970년대에 현 위치에서 1Km쯤 떨어진 용장천에 묻혀 있었던 것을 주민들이 발견하여 옮긴 것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냇가에서 5Km쯤 상류지역에 2구의 불상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떠내려온 것이라고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은 화강암의 전면에 얼굴과 손등을 조각했으나 옆과 뒷면에는 거친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마모가 심하다.


목은 부러졌던 것을 복원하였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간략하고 형식적이며 입체감이 없다.

 

 

다시 발걸음은 유상묵가옥으로 향한다.

 

유상묵가옥의 담장 뒤로 본디 빨간 단풍은 마치 가을인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뒷답장엔 빨강이며 분홍인 봄꽃들이 속속 만개해 여심을 뒤흔들어 놓았다.

 

 

자목련 또한 활짝 필 조짐이라 유상묵가옥의 담장과 정면은 꽃잔디로 그야말로 꽃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 서산 아라메길, 유상묵가옥


유상묵가옥은 유기방가옥과 마찬가지로 서산의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야산을 배경으로 'U'자형으로 토담을 두른 후 동측에 안채 공간과 서측에 사랑채 공간을 막돌담장으로 구분하였다.1925년 소유주의 선친인 유상묵(구한말 종5품)이 명당이라 전해지는 현재 위치에 서울의 운현궁을 본떠서 건축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ㅡ'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두 공간은 행랑채와 담장으로 명확히 구별되어 있다. 출입문도 구별되어 각각 안대문과 사랑대문으로 출입할 수 있으며 'ㄴ'자형의 행랑채 익랑에 있는 중문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데다 대지 전체가 담장으로 구획된 것이 가장 획기적이었는데 대지 전면 담장과 사잇담은 막돌담장으로 되어 있고, 후면 담장은 토담 위에 서까래를 걸고 토기와를 얹어 놓았다.

 

서산 아라메길의 아주 짧은 코스만을 돌아보았지만 서산의 아름다운 봄을 만났고 우리네 전통적인 양반가옥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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