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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2012.01.26(목) 잎싹(kji20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연기는 세종시 건설로 도심의 색깔이 변하고 있다. 아직은 먼지가 폴폴 나는 건설현장을 보면서 찾아간 곳은 96번 도로를 따라 은행나무가로수가 줄지어 서있고 마을앞으로는 개울이 가로 지르고 넓은 논이 펼쳐져 있으며 뒤로는 전월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양화1리 마을이다. 마을 표지석 에는 마을의 유래가 희미하게 적혀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마을과 소통을 연결해주는 오래된 다리를 건너자 마자 수백년 살아온 노거수와 승모각을 만날 수 있다. 600년 된 은행나무는 마치 그리움을 안고 있는듯 서로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은행나무는 "양화리 은행나무"로 충남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여말선초의 인물인 임난수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심은 나무라고 한다. 임난수는 고려말 탐라정벌에 대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낸 인물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불렀으나 이에 부름에 응하지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킨 고려유신이다. 공주 공주목 삼기촌(지금의 남면 양화리)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낙향지에서 망국의 고려를 생각하며 심은 충절의 상징이기도 한 한쌍의 은행나무는 600여년 세월을 지키고 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이 은행 나무는 나라에 큰변이 생겼을 때마다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1910년 한일합방과 한국전쟁 때도 울었으며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나무에서 소리가 나서 자르지 못하였다고 한다.  특히 우측의 은행나무는 여느 은행나무의 수형과 달리 밑둥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수형은 마치 고려의 애절한 그리움과 충절을 외치듯 기묘하게 용트림하듯 그 기개가 느껴지는것 같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마주보고 있는 은행나무는 그에 반해 조금은 애처로워 보이는 보수흔적이 있지만 그래도 수백년 세월의 웅장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서로의 모습에 의지하며 버티어왔기에 수백년 살아온 마을의 신목으로서의 자리를 당당히 지킨 노거수가 되지 않았을까.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두 은행나무를 사이에 두고 바로보이는 삼문은 승모각(향토유적 제35호)으로 담장이 둘러싸여 굳게 문이 닫혀 있는데 좌측 안내판과 승모각 과 함께 임씨가묘유지 비석 1기 를 볼 수 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이곳은 고려말 최영장군과 탐라를 정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원 임난수(13421407)의 은거지이다. 낙향한 임난수는 마을 뒤 전월산에 올라 고려왕조를 향하여 절을 했던 부왕봉과 상려암 등이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1407년 임난수가 사망하자 고려의 유신으로 벼슬하지 않은 충절을 길이 높여 조선 조정에서는 세종1년(1419) "임씨가묘" 의 편액을 내리고 사당과 사패지를 허락할 정도로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고 하였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승모각은 (향토유적 제35호) 1923년 이곳에 유지의 비를 건립하고 1957년 전국 임씨 총회에서 이곳 건물을 중수하여 시조인 충절공 임팔급을 비롯한 그의 후손 14위를 모시고 1964년 건립되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 임씨가묘유지비
뒷면에는 1868년(고종5) 이곳의 신주를 기호서사로 옮겼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문화재를 탐사하러 다니다보면 굳게 닫혀있는 문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렇게 낮게 담장이 되어있을때는 그나마 안을 드려다 볼 수 있기에 그 마저도 고마움이 느껴진다. 

 

 

  고려의 충절이 베인 600년 은행나무와 승모각 사진  
 
승모각 담장을 따라 아쉬움을 가지고 천천히 걷다보니 겨울을 삭막한 추위만큼이나 찾아오는 이 없을 것 같은 이곳에 누군가의 눈길을 기다리는 탱자열매의 노랑 향은 오그라진 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살아있는 노거수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경쾌하다. 봄처럼 은은하지도 여름처럼 울창하지도 가을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허연한 계절 , 겨울에 만나는 은행나무는 주름마다 세월의 질긴 그리움과 충절이 골골이 베어 있는 것 같다. 전해지는 충절 이야기에 어떻게 사는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 삶인지 자연이 주는 마음에서 잠시 뒤돌아보게된다.

 양화리은행나무/승모각
충남 연기군 남면 양화리 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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