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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2011.12.04(일) 잎싹(kji206@naver.com)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신앙 선조들의 순교 성지인 해미순교성지는 1801년의 신유박해와 1811~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기에 이르기까지 밝혀진 해미의 순교자는 총 179명 이상이 된다. 특히 해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생매장 순교터와 그 순교자의 유해가 확인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해미성지는 대성당, 소성당, 순교기념전시관, 이름없는집 자리개돌, 진둠병, 노천성당, 순교탑, 순교헌양탑, 무명순교자의 묘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생매장 순교성지 여숫골은 해미천 좌우 주변에서 1899년부터 1872년 사이에 천여 명 이상의 신자들이 생매장당하였는데 이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 그 일부를 발굴하면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 높이 16미터의 탑을 세웠으며 1985년 해미 본당 설립이 되었다.  대성당의 기와지붕이 이색적으로 원형외벽의 12기둥에는 성전 건립 은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 성당내부모습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본당 뒤에는 원형으로 되어 모양이 독특한 순교자 유해를 모셔놓은 해미순교성지 기념관이 있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무심코 들어섰는데 정면에 박해시절에 묶여서 끌려가는 무명순교자들의 모습은 그날의 아픔과 외침이 느껴지는 것 같아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유해발굴현장 사진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해미읍성 안 감옥 터 옆에 서 있는 회화나무(호야나무)는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을 매달아 처형했던 순교목이 있는데 이 나무토막은 2004년 회화나무 수술 시 제거된 부분의 일부분이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1989년 진둠병 위쪽 뚝 밑에서 발견된 휘광이 칼은 박해 당시에 형리들이 죄수 참수용으로 사용캐하던 칼로 추정되는 원본이 분실되어 발굴사진으로 재현하여 놓은 것인데 녹슨 칼을 보는 순간 섬뜩한 그날의 아픔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벽면에는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회화나무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는 모습과 자리개질 당하는 순교자의 모습, 또한 생매장당하는 순교자와 진둠벙에 수장당하는 순교자들의 당시의 처참하고 극박했던 모습을 보여 주는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들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라고 조형물 위에 적혀 있는데 종교가 달라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막연히 그 뜻의 의미는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특히, 유해 발굴 때 나온 치아는 총 242개로 20여 명의 순교자의 치아로 보이는데 20~30대 청년층이 18명 정도 되고 40~50대가 3인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진 그들의 흔적은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교인들에게 또 다른 가르침으로 오랫동안 기억 될 것이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기념관을 나오니 좌측 바위에는 적산 주렛골에 살던 해미지역 첫 순교자인 인언민 마르티노의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 라는 의미 심장한 글귀가 보인다.  여숫골은 순교자들의 "예수 마리아!"라는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 듣던 곳에서 비롯되어 주민들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여숫골"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십자가의 길에 있는 조형물은 교우들의 목에 채우던 속쇄형 큰 칼의 모형을 본 딴것으로 큰 칼 구명에 원형의 돌을 깎아서 끼워 넣고 그 표면에 그림을 조각한 것으로 그림의 한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과 다른 한 면은 순교자들의 죽음의 행진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 노천성당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순교탑/무명순교자의묘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또 다른 역사의 현장 생매장 순교지 진둠병은 1866년 병인년으로부터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이기 위하여 생매장형을 했는데 십 수 명씩 아무 데나 큰 구덩이를 만들어 산사람들을 밀어 넣어 흙과 자갈로 묻어버렸다.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으로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에서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지금은 기척 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으며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해미성지.. 그날의 아픔을 전하고 있는 한 편의 시가 마음을 울린다.
 
성혈로 물든 바다여..
날마다 노을 꽃으로 피어나소서
벌거숭이로 하느님 믿고 사는데 죄가 되어
... 가지마다 멍이 들어도 숨찬 나그네 들 푸른 빛 그늘로 덮어 덮어 주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 무명순교자의 비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위에 놓여 있던 돌다리는 병인 대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로 원석을 2009년 1월 이곳 여숫골로 옮겨 순교자 기념관 맞은편에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원래 그 터에는 모조품이 자리하고 있다. 종교는 틀려도 잠시 정말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하며 아픔을 달래고 싶다. 
 
  뒹구는 낙엽도 서걱거리는 해미순교성지 사진  

순교한 진리 앞에 스스로 아낌없이 목숨을 내어 놓은 순교자의 터에서는 뒹구는 낙엽하나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줌도 고결한 숨결을 느끼는지 서걱거린다.
 
해미순교성지 (041-688-3183)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4-10
(http://www.haem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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