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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령 칼럼] 황룡리 마을기 용기1

2024.04.08(월) 17:45:44 | 주간보령 (이메일주소:93177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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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령칼럼황룡리마을기용기1 1


전통 농업 문화유산 황룡리 용기

충남 보령시 청라면 황룡리 용머리 마을에는 마을기인 용기(龍旗)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2024년 현재 전해지는 용기(龍旗)가 처음 제작된 것은 1934년 가을입니다. 이 깃발은 지금까지 90년 동안 용머리 마을을 상징하고 주민의 공동체 의식과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 왔습니다.

오래된 깃발이지만 본래 형태나 채색이 원형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깃발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이 훼손되지 않았고 잘 관리되어 마을기로서 제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지금도 유효하게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용머리 마을 사람들은 이 용기를 여전히 귀하고 자랑스러운 깃발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용기야말로 마을 주민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농업 문화유산입니다.

 

황무지 개척과 상조 전통의 용기

용머리는 보령시 청라면 황룡리 내에 있는 40여 호의 작은 마을입니다. 북쪽 오서산(791m)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천, 광천, 청양, 부여 등 사방 도회지로부터 30여 리 떨어진 오지 산간 농촌 마을입니다. 주민들은 산기슭을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 높은 산에서 발원한 석우천, 황룡천에 여러 개의 보를 막아 개간한 농토에 물길을 내어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힘겨운 산 개간과 물길 내는 일에 동계(洞契: 현재도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등을 조직하여 힘을 합쳐 함께 나서 왔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하늘 등 초자연적인 힘에 경의를 표하고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이는 마을의 서낭당, 거리제, 용기와 풍물패 연행 등의 민속으로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늘 감사와 마을 공동체 의식 제고의 제작 내력

용기는 1934년 마을 상여가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든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당시 민화 화가를 초빙하여 마을 상여와 용기를 함께 그렸다고 합니다. 깃발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금하여 대천장에서 광목을 샀고, 마을 부녀자 중 흠결 없는 정결한 여인들만 마을 사랑방에 모여 깃발 바느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집 마당에다 빈 깃발을 걸어놓고 상여와 같은 물감에 놋쇠 가루를 섞어 만든 물감으로 전면 청룡(靑龍) 뒷면 적룡(赤龍)의 용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이 용머리 용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양면에 용이 모두 그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의 한쪽 면만 용이 그려진 것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 크게 하고 있습니다. 크기는 347cm×166cm로 가로가 큰 깃발입니다. 용기의 위아래는 24개의 지네 발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략 크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26cm×20cm 정도입니다. 농민들이 농사의 주요한 시기로 여기는 24절기를 상징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의 오른쪽에는 기꼬리가 세 개가 장식되어 있고, 왼쪽에는 연조(年條)가 새겨져 있습니다. ‘昭和九年歲甲戌秋七月旣望登龍이라고 새겨 넣어 1934년 갑술 해 음력 716(양력 825) 완성되었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깃대와 깃발을 연결하는 기끈도 위와 아래에 각각 하나씩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깃발을 단 깃대는 9m 정도 나가는 대나무로 아랫면 지름 10cm 정도의 왕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근 서해의 섬에서 구해 온 것입니다. 깃대의 맨 위에는 꿩장목을 달았는데, 꿩의 깃털 15개 내외를 묶어 만든 것으로 하늘의 기운을 내리받는 것으로 상징됩니다.

그 아래 청올치(깃수염), 깃방울, 깃수건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전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풍물을 연행하면서 용기를 들고 이동하는 일은 상당한 힘이 필요하고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여 기운이 센 사람이 깃대를 들고 여러 사람이 각각 붙잡은 균형과 힘의 분산을 막기 위해 깃대 중간에 세 가닥의 버랫줄이 있습니다. 애당초 버랫줄은 깃발과 같은 재질의 광목이었으나 최근 오색의 나일론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기망(旗網)이 있어 기를 세우거나 이동할 때 받침으로 활용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습니다. 용기의 보관과 관리도 잘 되어 왔습니다. 용기가 처음 제작되고 나서부터 60여 년간 줄곧 한 곳에 박○○씨네 소 다락에 보관됐습니다. 이 소다락은 습기가 없고 공기도 잘 통하여 보관 장소로는 적정한 곳이었습니다. 1995년 마을회관이 건립되자 이후 마을회관 내에 별도 보관 장소를 만들고, 그 공간에 특별 제작한 보관함에 용기를 넣어 관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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