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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금산 보석사,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감성이 만나는 곳

금산의 자랑, 보석사에서 발견하는 평화와 조화의 메시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11

2024.02.11(일) 23:47:11 | 포토안세상 (이메일주소:photoanworld@outlook.kr
               	photoanworld@outlook.kr)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석사를 방문한 순간부터, 나는 시간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885년, 신라시대의 끝자락에 조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진락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오랜 세월 동안 한국 불교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절 이름인 '보석사'는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이 이름만큼이나 이곳은 실제로 시간이 정지된 보석 같은 공간이다.

절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 사찰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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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 보석사의 경내에서 느린 걸음으로 거대한 나무로 다가갔다. 마치 수 세기의 역사를 담은 듯했다. 굵은 나무껍질에는 자연의 시간이 새겨져 있었고, 마치 그 나무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증인처럼 느껴졌다. 나무의 높이를 따라 시선을 올려 나뭇가지들이 하늘로 뻗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이 나무가 겪은 많은 계절의 변화와 그 아래서 수행한 수많은 이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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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이 숲길을 걸으며 나는 고즈넉한 평화를 느꼈다. 겨울의 마지막을 담은 듯한 맨 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오는 모습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살짝 눈부신 햇빛이 나무 사이로 떨어져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 사이로 걷는 나의 발걸음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조용히 산책을 이어가며, 나는 이 길이 수많은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안내한 길이라 생각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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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들어 사찰의 기와지붕과 그 아래 조각된 목재들을 바라보았다. 전통적인 한국 건축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무늬와 복잡한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공예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 위로 펼쳐진 하늘과 사찰의 뾰족한 지붕 끝이 만나는 경계에서는 현대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서서 이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공간과 순간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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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의 문 앞에 서서,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한글의 서체를 바라보며 나는 이 순간 세종대왕님의 위대한 업적이 더욱 가슴 깊이 와닿는다고 생각했다. 그 붓글씨는 당장이라도 흘러온 물결처럼 나에게 다가와, 한글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이 글자 하나하나가 우리 민족의 지혜와 정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저 글씨들이 쓰인 시간과 그것을 읽은 모든 이들의 시간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지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세종대왕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분의 꿈이었던 백성들의 지혜가 이 한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이 순간을 조용히 가슴속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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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의 표면은 연속된 기와 한 조각 한 조각이 정교하게 이어져 만들어낸 선과 무늬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느낀다. 흙과 불의 조화로 탄생한 이 기와들은 이곳이 겪었을 수많은 해와 바람, 비와 눈을 막아주었을 것이다. 이 조용한 숲속에서, 기와의 역사가 깃든 무게를 손끝으로 느끼며, 저는 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붕이 마치 시간 자체와 같다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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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의 목조 구조물을 상세히 관찰하며, 손으로 다듬어진 목재의 감촉과 오랜 시간을 견뎌낸 견고함에 감탄했다. 각 목재의 결을 따라 세월의 풍화와 스님들의 손길이 어떻게 이 나무를 다듬고 변화시켰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문고리와 창살 하나하나에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찰이 단순히 종교적인 장소를 넘어서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문화적 유산을 통해 조상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예술적 감각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이 남긴 이 자취들을 조용히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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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자연의 회전무대 위에서 연극을 펼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무에 매달린 색바랜 수많은 기원지는 바람에 흔들리며, 각자의 소망과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나무의 강인한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그 사이로 역사의 시간이 흘러갔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기도가 이 나무를 통해 우주로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겼다. 그 나무의 뿌리가 깊고 단단히 박혀 있는 모습에서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닌,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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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와 기도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사찰의 지붕과 이 조화를 이루는 이 석조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강조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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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하게 흐릿한 사찰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 불분명한 윤곽은 사찰이 가진 신비로움을 더욱 부각했다. 한 걸음 내디뎌 사찰의 입구로 들어서자, 견고한 나무 기둥과 마룻바닥이 근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찰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길을 걸으며, 저 멀리 보이는 단정한 전경 속에서 평온함을 느꼈다. 이 연결 통로를 따라 걸으며, 이 순간 이곳이 준 안식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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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이 사찰을 찾은 수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만의 소망을 묵묵히 마음속에 담아본다. 길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하나가 이 사찰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온 변화와 성찰의 순간들을 말해주는 듯했다. 조금 더 낮추어 머리를 숙이고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고종 때 명성황후에 의해 중창된 이 사찰은 원당으로 삼아져 다시금 그 영광을 되찾았고, 1912년부터는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사찰에 도착하자 마자 눈에 띈 것은 대웅전, 진영각, 심검당, 산신각, 응향각, 체실, 요사채 등 현존하는 당우들이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 맞배지붕 구조로, 내부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문수보살의 좌상은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해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도 극치로 평가받는다. 이 고요하고 경건한 공간에서 잠시 시간을 잊고 명상에 잠겨본다.
진영각에서는 영정을 도난당한 아픈 역사도 있지만, 이곳의 의병승장비는 절 입구에 세워진 것으로,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을 기리는 비이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 동안 훼손되었으나, 1945년 정요신에 의해 다시 발견되어 세워졌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절 입구의 큰 은행나무는 또 다른 인상적인 모습이다. 이 나무는 조구가 제자들과 함께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뜻에서 심은 것으로,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전설 속에서도 보석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영감과 평화를 제공한다.
보석사를 방문하며, 한국 불교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조상들의 지혜와 헌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불교 사찰이 아니라, 한국 역사와 문화의 살아있는 증거이며, 모든 방문객들에게 고요하고 평안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보석사의 모든 것이, 과거의 영광을 오늘날에도 전하며, 미래 세대에게도 그 가치를 계속해서 전달할 것임을 확신한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석사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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