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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구국의 충정을 배우는 곳,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

2023.12.18(월) 23:10:37 | 희망굴뚝 ‘友樂’ (이메일주소:coke4856@hanmail.net
               	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는 전국 5대 짬뽕 맛집에 손꼽힌다는 중식당이 있습니다. 전국 5대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갈 때마다 테이블에 손님이 꽉 들어차 있는 걸 보면 지역 토박이들이 인정하는 짬뽕 맛집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가끔 그곳에 점심을 먹으러 가다 보면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띄는 곳이 있는데,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公州 貴山里 萬頃 盧氏 三義士 生家址)'입니다. 오늘은 지나쳐만 다니다 며칠 전 제대로 둘러본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이하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만경 노씨 삼의사 전경
▲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 (공주시 우성면 심산길 36-26) 전경

만경 노씨 삼의사 홍문
▲ 만경노씨 삼의사(三義祠) 홍살문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에 의병운동으로 순절한 삼의사의 생가지로 삼의사는 노응환(盧應晥), 노응탁(盧應晫), 노응호(盧應晧) 3형제를 일컫습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趙憲)의 휘하에서 청주성(淸州城) 탈환에 큰 공을 세우고, 1593년 8월에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저지하기 위해 제2차 금산전투에서 격전을 치루다 조헌 및 700의사와 함께 전사했습니다.

삼의사의 유해는 조헌의 문인(門人)이 만든 700 의사의 무덤인 칠백의총(七百義塚)에 묻혀 있으며, 1604년(선조 37) 나라에서는 3형제의 충정을 기려 중추부지사 벼슬을 내리고 정려각(旌閭閣)을 세우게 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공주시는 '만경노씨 삼의사'를 2020년 6월의 공주 역사인물로 정한 바 있는데, 삼의사에 관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어 참고로 적어 둡니다.

「(전략)
이 과정에서 맏이 노응환과 둘째 노응탁은 칠백의사와 함께 순절했으며, 막내 노응호가 순절한 두 의사의 시신을 찾아 고향에 안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중봉집’과 19세기 초 성해응이 지은‘금산 순절 제신전’, 1895년에 편찬된 ‘공산지’에 기록돼 있고, 노응탁에 대한 내용은 금산 칠백의총 ‘일군순의비(1603년, 선조36년)’ 비문에도 기록돼 있다.

최근에는 만경노씨 삼의사가 임진왜란 이후에도 공주를 대표하는 유생으로 활발히 활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공주 유림의 충절을 대표하는 삼의사의 의병 활동은 이론이 없는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경 노씨 삼의사 홍문 2
▲ 만경 노씨 삼의사 충의문(忠義門)

만경노씨 삼의사(三義士)의 생가지는 1979년 충남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81년 사우를 건립하여 삼의사(三義祠)라 현액하였다고 합니다. 노응환·노응탁 정려각 (盧應晥·盧應晫 旌閭閣) 앞에는 삼의사사우건립연혁비(三義士祠宇建立沿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노응환, 노응탁 정려
▲ 노응환의 신도비와 삼의사사우건립연혁비(왼쪽)

노응환, 노응탁 정려
▲ 노응환, 노응탁 정려(盧應晥·盧應晫 旌閭)

노응환, 노응탁 정려 2
▲ 노응환, 노응탁 명정현판

만경노씨 삼의사에 오르기 전 왼편을 살피면 노응환·노응탁 정려각(盧應晥·盧應晫 旌閭閣)이 보입니다. 공주의 유림과 문중의 노력으로 노응환(應晥, 1555~1592)과 노응탁(盧應晫, 1560~1592)은 1831년에 충신정려를 받았다고 합니다.

노응호 정려 1
▲ 노응호 정려(盧應晧 旌閭)

노응호 정려 2
▲ 노응호 명정현판

만경노씨 삼의사 사우로 오르기 전 계단 왼편을 살피면 노응호의 정려각이 보입니다. 노응호(1574~1592)는 1982년에 충신정려를 받았다고 합니다.

관리사
▲ 노응호 정려 뒤편으로 관리사(官理舍)가 자리한다.

삼의사와 신도비
▲ 삼의사(三義祠)와 삼의사순의비(三義士殉義碑)

삼의사
▲ 삼의사(三義祠)

신도비
▲ 1982년에 세워진 삼의사순의비(三義士殉義碑=순절비)

만경노씨 삼의사는 공주의 삼의사(三義祠)와 금산의 종용사(從容祠), 보은의 후율사(後栗祠)에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삼의사(三義祠)는 늘 개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근에 만경노씨대종회관(萬頃盧氏大宗會觀)이 있기는 하나 관계자가 상주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운이 좋아 충의문을 열고 사우까지 돌아볼 수 있었는데, 출입할 수 있는 날짜를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경노씨 삼의사에서 내려다본 귀산리 일대
▲ 만경노씨 삼의사(三義祠)?에서 내려다본 귀산리 일대

삼의사(三義祠)를 나와 충의문 앞에 서서 귀산리 일대를 둘러보니, 별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곳이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 앞을 지나게 되는 분들은 사우를 찾아 삼의사(三義士)의 충의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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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모정(感慕亭)과 대원당노재선생명덕비(大元堂盧載先生明德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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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모정(感慕亭)과 대원당노재선생명덕비(大元堂盧載先生明德碑) 2

평소와 달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날이어서인지 몰라도 한 번도 눈에 띄지 않던 비석과 정자도 보였습니다. 특히 스산한 계절에도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내친김에 그곳에 대해서도 알아볼 겸 다가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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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모정 옆의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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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모정(感慕亭)

정자 주변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논이 많으니 농사를 짓기 위해 파 놓은 웅덩이일 수도 있지만, 정자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감상용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모정(感慕亭)이란 현판을 단 정자는 마루가 훼손된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정자의 형태, 단청, 현판 등으로 보아 오래전의 것으로 판단돼,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검색 결과, 감모정은 삼의사가 강학하던 정자라고 합니다. 훼손 범위가 넓어지기 전에 바닥은 보수하고 작은 것이라도 안내판이 세워지면 생가지를 찾는 분들이 삼의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검색하지 못한 대원당노재선생명덕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으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
충남 공주시 우성면 엄나무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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