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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16년 전 사고극복 과정 담긴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 눈길 끈 자원봉사자들의 구술기록

태안원유유출사고 16년 맞아 다시 찾은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2023.12.08(금) 09:43:09 | 주간태안신문 (이메일주소:east334@hanmail.net
               	east334@hanmail.net)

태안의 기적을 이룬 자원봉사자들.

▲ 태안의 기적을 이룬 자원봉사자들.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로 기록되고 있는 태안원유유출사고가 발생한 이후 16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중에서도 사고 발생 이후 피해 배보상과 지역발전기금을 두고 찾아온 ‘공동체 붕괴’는 태안주민들을 더욱 나락으로 이끌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고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원유덩어리를 닦아낸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태안의 빚’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낭보도 이어졌다.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 지난해 11월 삼국유사 및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된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물’은 2007년 태안에서 발생한 대형 유류유출 사고와 그 극복과정을 담은 22만 2129건의 기록물이다.  

그 기록의 일부가 일반에 공개됐다. 바로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회에서다. 태안원유유출사고 16주년을 맞아 다시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을 찾아 그 속에서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해 펼쳐지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을 다시 찾았다.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오는 12월 10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에서는 2007년 12월 7일 태안원유유출사고 이후 사고대응 기록이 담긴 일일종합상황일지를 비롯해 대책회의 결과보고서, 방제작업 진행 보고서, 작업자 출근일지, 자원봉사활동 경험 구술기록, 피해주민단체 구성 및 신고서와 배보상 지급대상자 명부에 이르기까지 재난극복 과정이 소상히 담긴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다. 

▲사고대응 ▲방제활동 ▲자원봉사활동 ▲배·보상 ▲복구활동 ▲환경·사회 복원 ▲국제협력 등 7개 주제로 구분해 전시되고 있는 특별전에서는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 목록에 이름을 올린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록물’ 100여 건을 만나볼 수 있다.

다시 찾은 특별전 속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다. 사고 당시 주민들의 심경을 풀어 쓴 주민 인터뷰 구술 기록과 사고 이후 한달음에 태안을 찾아 원유덩어리를 서슴없이 닦아 냈던 자원봉사자 6명의 구술기록이었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 잃었던 주민들…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는 16년 전 주민 심경

먼저 특별전 속에서는 사고 당시 주민들의 심경도 되뇌어 볼 수 있다. 특별전시장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주민 인터뷰 구술 기록’ 속에서다. 그 당시 심경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섬사람들의 터전이 바다 아닙니까. 여기는 바다가 풍부해요. 자연산 홍합, 돌미역, 돌다시마, 톳, 굴, 세모 그런 것들을 바다에서 1년 내내 뜯고, 봄부터 겨울 될 때까지 낚시질해서 우럭도 잡고 광어도 잡고, 놀래미도 잡고, 노인네들이 그걸 잡아서 팔아서 살았어요. 여기가 전부(섬을 빙 둘러) 양식장이에요. 거기에 대한 수입이 있고, 여유 있는 생활을 했죠. 그런데 기름 피해로 바다가 망가진 거 아니에요. 겨울 동안 굴하고 홍합을 따는데, 일절 하나도 못 한 거죠. 그러니 생계가 막막하죠... 생활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에. 섬사람들의 생명이 바다 아닙니까. 바다에 못 나가니 막막하죠. 앞으로 큰 문제가 뭐냐면, 기름 유출피해로 인해 생태계가 언제 살아날지 모른다는 거죠. 1년 뒤에 살아날지, 5년 뒤, 10년 뒤가 될지. 바다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여기 사람들은 그냥 죽는 거죠. 아무것도 못 하니까”

“기름사고 나서 아주 소용없게 됐지. 돈을 못 벌지, 못 벌기만 혀. 작년에 이천만 원 벌었다면 올해는 천만 원도 못 해. 기름사고 전에는 관광객들이 전복 먹으러 평일에도 왔거든. 근데 주말에도 이제 오지 않아.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해녀가 일곱, 여덟 되거든. 해녀들이 만약 5킬로 전복을 잡아도 그걸 다 못 판다니까. 그래서 죽는 게 반이야. 손님이 없어. 물건도 없지, 판로도 없지. 해녀들이 이렇게 힘들지. 기름사고 때문에 바당(바다)도 없고.... 전복 5킬로 잡으려고 두세 시간 저 먼 곳으로 나가... 홍합 따러.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린다고. 기름사고 전에는 이 앞바다가 다 양식장이고 가까운 데서 했는데 이제는 멀리가. 멀리 가도 돈도 못 벌고... 진짜 힘들지”

절망에 빠진 태안유류피해민에 ‘희망’을 쏜 자원봉사자들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이렇게 암울한 심경으로 절망에 빠진 유류피해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당시 태안반도를 찾아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해안가 자갈에 붙은 검은 원유덩어리를 닦아내고 모래사장 깊숙이 침투한 원유를 걷어내면서 오늘날의 ‘청정 태안’의 제 모습을 되찾게 만든 일등공신인 자원봉사자들은 16년 전 어떠한 심정으로 태안반도를 찾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원유덩어리를 닦아내며 느낀 소회는 어땠을까. 16년이 지난 지금,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울림을 곱씹어 보고 다시금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별전시장에서는 6명의 자원봉사자 인터뷰가 영상을 통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6명 중 4명의 소회를 간추려 소개하면 이렇다.

소개할 자원봉사자들은 사고 당시 인천사랑회 회원으로 태안봉사활동을 자처했던 박노권 씨(현재는 인천시 중구 자원봉사센터 월미산지기 회장)와 사고 당시 14살이었던 대학생 박종호 씨, 파키스탄 투자청 카운슬러인 수바칸 씨, 이광희 태안의항교사 목사 등이다.

먼저 박노권 씨는 “처음 갔을 때는 고생하러 오신 분들 따뜻한 커피 끓여서 접대하고 2차 참여 했을 때는 실제 바다 주변에 깔려 있는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참여했습니다. 참여 회원들이 얼굴에 기름을 묻히면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당시 환경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기름 모아 놓은 거 보면 참 비참했습니다. 기름탱크를 한 60여개 갖다놓고 거기다 퍼붓었습니다. 기름바다지 물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기름바다였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사실 어떻게 보면 그때 당시에 쫌 피동적이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자꾸 붐비다보니까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전부 각 지역에서 많이들 왔는데, 그때 당시 단체들도 많이 왔는데 기름을 수집한 것을 옮기는 과정을 봤을 때 ‘단결심이 강하구나’, ‘한국사람 참 대단하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게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참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기름바다지. 그 이후에 내가 몇 번 갔는데 가다보니까 깨끗해. 언제 그 기름바다가 있었던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했던데 가서 돗자리 펴고 앉아서 막걸리도 먹고 그런 기억이 남네요”라고 회상했다.

박종호 씨는 “돌이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해 보이는데 거뭇거무한 것들이 많이 묻어있어서 닦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냄새가 심해서 머리 좀 아프고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닦는 작업을 했는데, 대부분은 닦는 작업 위주로 했습니다. 가족들이랑 같이 가기도 했고, 친구들도 몇 명이 갔었는데, 친구들이랑 열심히 닦으면서 솔직히 가기 힘들고 냄새나서 머리도 아픈데 친구들이 자기 손에 묻은 줄도 모르고 막 얼굴 만지고 그러는데 얼굴에 기름 묻고 그런 거 보면 웃겨서 다시 이거 닦으라고 하면서 서로 닦아주고 그러면서 재미있게 봉사활동 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랑 나올 때랑 사실 처음에는 차이를 많이 못 느꼈습니다. 냄새도 그대로 나고, 열심히 닦았는데도 티가 많이 안나니까. 근데 이제 저 말고도 다양한 분들이 봉사활동 하면서 하루하루 달라지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진으로 가시적으로 보이고 많이 좋아졌다고 뉴스에서도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 오셔서 좋아졌다는 걸 보면서 그때는 제가 이렇게 닦았는데 도움이 안된 것 같기도 하고 진짜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게 진짜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면서 저도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가면 기름이 엄청나게 유출되고 내가 해도 안될 것 같았던 것들도 다 할 수 있구나 하고 많은걸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도와주면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라고 뿌듯해했다.

수바칸 씨 “제가 느낀 특별한 경험은 한국인들은 나라가 어떤 도전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함께함으로써 더욱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은 강한 바람과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또 행복해하면서 서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가없이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원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저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친밀해지고 마음을 나누는 데에는 자원봉사가 정말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원봉사자가 된 계기는 잡지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 한 자원봉사자인 지미 카터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었고,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더욱 행복하고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자원봉사를 하며 가지게 된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빈손으로 태어나고 그 이후에 사회의 가족으로부터 이름을 받게 되고, 그렇게 받은 이름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는 정체성이 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나고 우리가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면 우리는 좋은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좋은 이름뿐입니다. 자원봉사는 우리가 좋은 사람 좋은 일, 좋은 봉사를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좋은 이름은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성장하고 그들이 강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자원봉사자로 이름을 남겨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자원봉사자라는 사실이 좋고 행복합니다”라고 자원봉사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광희 태안의항교사 목사는 “바다도 좋고, 산도 좋고, 참 동네도 좋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기름피해 당했을 때는 정말 막막했죠. 물이 들어와도 기름바다고 물이 나가도 기름바다고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기름냄새 뿐이었고, 처음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낙후된 지역이라 들어오는 길이 좋지 않아가지고 자원봉사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아마 제 평생 최고로 많이 받아봤고, 최고로 많이 나눠줬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물품은 오시는 분들이 자기들 사용하려 가지고 왔던 것들을 여기서 다 제공해주다 보니까 가지고 온 옷을 몽땅 내려놓고 가기 시작했고, 또 군에서 지원이 나오고 저희 같은 경우는 여기저기 큰 교회들에서 또 지원이 나오고 매일같이 들어오는 물품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바닷가에 있는 일곱 개 교회에 함께 나눠주면서 그렇게 봉사를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느 날 어떤 분들이 봉고차로 오셨는데 쌀을 가지고 왔다 그래요. 자기들 밥 먹는데 한 끼 금식해서 금식미를 모아서 가지고 왔답니다. 앞으로 나가 맞아서 그걸 받아놓고 보니까 한센병 환자들, 손이 거의 없는 분들, 얼굴도 코도 귀도. 그런 분들이 금식을 해 가지고 금식미라고. 여기 밥하는데 그 쌀 좀 보탰으면 좋겠다고 가지고 왔는데 정말 받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감사했고요. 어려움 당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랑을 베풀면서 내 시간, 내 물질, 내 몸을 희생하면서 이렇게 돕는구나.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자랑스럽다. 왔다 가신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그 외에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와서 봉사했던 분들, 한달 숙소를 정하고 있던 분도 계셨고, 그런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태안기름피해는 어쩌면 재앙이었지만 그 재앙 속에서도 한국국민의 아름다운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또 그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바다가 깨끗해졌다”고 회상했다.

이달 10일까지 이어지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


한편,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는 지난 10월 24일 개관 이후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당시 행정기관에서 근무했던 공무원들, 그리고 지역주민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16년 전 태안에서 머물렀던 그들만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서 전시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윤성희 학예사.

▲ ‘태안유류피해극복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는 ‘태안의 기록, 세계의 기억’ 특별전에서 전시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윤성희 학예사.


그들의 추억과 기억을 마주하게 상세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의 윤성희 학예사는 “특별전시회 개관 이후로 반응이 좋아서 많이 다녀갔다”고 전하면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료를 묻는 질문에는 “어디에 관점을 둬야 하는지에 따라 다른데 22만 건 중에서 추린 자료여서 모든 자료들이 다 가치 있고 중요하다. 당시 자원봉사했던 분들이 오시면 피해현황이나 방제작업 사진을 보면서 대화를 많이 나눈다. 행정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은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보며 자원봉사자들과는 대화를 나눈다. 방문하는 분들이 어떤 분들이냐에 따라서 관심자료가 다르다. 그래서 보통의 전시회를 보면 전시관에 전시된 것들을 쭉 훑어보고 나오는데 우리 특별전시실은 공간이 작음에도 머무는 시간이 길더라. 뒷얘기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라고 특별전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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