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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시,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 다녀오셨나요?

2023.11.03(금) 04:43:08 | 나는 나답게 100% (이메일주소:yh1975@hanmail.net
               	yh197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2023 대백제전 프로그램

▲ 2023 대백제전 '웅진판타지아 뮤지컬'


2023년은 무령왕 서거 1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렇기에 2023 대백제전 프로그램에는 어느 해보다 관련한 행사가 많았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 국립공주박물관(공주시 관광단지길 34)


새 단장을 마친 국립공주박물관에서도 9월부터 무령왕과 관련한 특별전시,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를 시작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운영하는 SNS를 통해서 관련 소식을 접하다가 며칠 전에 특별전시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도착하니, 진묘수 모형 뒤편으로 본관 건물에 걸린 특별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보였습니다. 진묘수 모형은 무령왕릉 널길에서 발견된 진묘수를 7배로 확대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

▲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전경


리모델링을 끝낸 뒤여서 박물관 내부는 말끔했습니다.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실 앞에 도착하니,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와 관련한 벽보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어 호기심과 기대감을 증폭시켰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시,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의 전시기간은 2023.09.19~12.10이다.


박물관 상설전시실과 마찬가지로 기획전시실은 대체로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보라색 가림막을 드리워 섹션별로 전시공간을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전을 효과적으로 둘러보기 위해 『삼국사기』 권 제26 백제본기 4에 실린 백제 웅진기 왕(22대~26대)들의 죽음에 대해 먼저 살펴보았는데, 전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해 봅니다.
 

▲22대 문주왕(475~477년)은 9월에 왕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밖에서 묵었는데, 해구가 도적을 시켜 왕을 해치니 끝내 돌아가셨다.
▲23대 삼근왕(477~479년)은 (즉위 2년) 겨울 11월에 왕이 (15세로) 돌아가셨다.
▲24대 동성왕(479~501년)은 11월에 (왕이)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였는데 큰 눈에 막혀 마포촌에서 묵었다. 이때에 이르러 (백가가)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왕이)돌아가시니 시호를 동성왕이라 하였다.
▲25대 무령왕(501~523년)은 여름 5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무령이라 하였다.
▲26대 성왕(523~554년)은 32년(554) 가을 7월에 왕이 신라를 습격하려고 몸소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다. 신라의 복병이 일어나 더불어 싸웠으나 포악한 병사들에게 살해되어 돌아가셨다. 시호를 성이라 하였다. (성왕은 538년 사비성(부여)으로 도음을 옮겼다)
 

묘지석

▲ 무령왕릉 묘지석
 

체험용 묘지석

▲ 체험용 묘지석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에서 가장 먼저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유물은 '묘지석'이겠지요. 묘지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 사망일, 매장 시점 등을 기록한 돌판을 말합니다. 무령왕릉에서는 총 2매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령왕의 묘지와 간지도(干支圖), 매지권과 왕비의 묘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지석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묘지석의 기록으로 인해 무령왕릉은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 되었습니다. 53자인 묘지석의 내용에 따르면 무령왕은 523년 5월 7일 서거하여 3년 상을 치른 후 525년 안치되었고, 무령왕비는 526년에 사망하고, 529년에 매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지권은 토지신들에게서 무덤터를 사들인 내용을 돌에 새겨 증명한 문서로 무령왕의 매지권은 돈 일만문(一萬文: 오수전 한 꾸러미)을 지불하고 남서 방향의 땅(申地)을 사들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특별히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 볼 수 있도록 모형을 준비해 두었으며, 채석과 할석, 절단과 가공, 각석, 천공과 마감까지 묘지석의 제작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준비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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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 사격 무늬 벽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성왕은 돌아가신 왕을 위해, 선대 능들이 자리한 곳의 토지신에게 왕릉터를 사들여 글로 남기고, 이전의 전통과 달리 연꽃무늬 벽돌로 새로운 양식의 왕릉을 만들어 무령왕을 모시게 됩니다. 삼국을 통틀어 연꽃무늬 벽돌로만 왕릉을 지은 예는 무령왕릉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성왕은 527년 대통사(大通寺)를 짓고, 552년 일본에 불상과 경전을 전할 만큼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는데요, 연꽃무늬 무덤방은 무령왕의 선업(善業)이 내세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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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를 새긴 벽돌(막음벽돌)


무령왕릉의 막음벽돌로 사용된 '사 임진년작명 벽돌(士 壬辰年作名)'의 '사(士)'는 기와박사(瓦博士), 벽돌박사(塼博士)로 해석되며, 임진년(壬辰年/512년)은 무령왕이 사망한 523년보다 앞선 시기로 생전에 무덤을 미리 만들어 두었을 가능성을 추정하게 한답니다.
 

공주 왕릉원 29호분의 재발굴 조사에서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라는 명문 벽돌이 출토되어 관심을 받은 일이 있는데요, 이 명문을 통해 중국 양 나라 수도인 건업 사람이 29호분 축조에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벽돌은 무덤방의 아치형 천장을 막는 데 사용한 것으로, 같은 형식의 명문 벽돌이 무령왕릉과 6호분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나무

▲ 나무 널(목관)


무령왕릉에서는 무령왕과 왕비가 모셔졌던 화려한 장식의 목관 2개가 발견되었는데, 수종을 분석한 결과 상엽침엽수 계열의 금송(金松)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본 남부지방의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최고급 목재의 사용은 백제와 왜의 긴밀한 교류관계를 잘 보여주는 일례라 합니다.
 

목관은 내외부를 옻칠한 판재에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운반용 관고리와 머리에 금은판을 씌운 못 들을 결구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왕과 왕비의 관은 규모, 형태, 제작 방식은 유사하나, 사용 판재의 수량, 장식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왕의 목관이 장식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분적 지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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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시대의 제사용 그릇
 

석촌동

▲ 석촌동12호 나무덧널무덤 출토된 흑유 닭 머리 모양 항아리
 

하남 감일동 출토 부뚜막 모형 토기 세트

▲ 하남 감일동 출토 부뚜막 모형 토기 세트


다양한 제사용 그릇도 볼 수 있었는데요, 출토 과정에서 깨진 것으로 알았던 그릇들 중에는 죽은 이가 생전에 쓰던 물품을 의도적으로 깨뜨려 생사 경계를 단절시키는 풍습(훼기, 毁棄) 때문에 깨진 채로 출토된 것이라 합니다. 같은 시기의 수장층 무덤에서 훼기 행위가 보이지 않는 경우는 죽은 이의 물품이 아니라 왕실에서 하사받은 물품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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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제사용 그릇들도 살펴볼까요? 대렴(大殮)을 마친 성왕은 빈전(殯殿: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의 관을 모시던 전각)을 차린 뒤 목관 앞에서 국내외 조문사절단을 맞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빈례(殯禮)를 마친 성왕은 왕릉까지 목관을 이동하는 발인(發靷)과 왕릉에 안장하는 하장(下葬) 절차를 밟았는데, 진기한 제기들로 세 번에 걸쳐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무령왕의 목관 앞에서 네 귀 달린 흑유(黑釉)병과 청자잔, 청동잔이 각 1점씩 발견되었고, 수습된 유물 중에는 제사상으로 추정되는 나무 편(木片)과 은어뼈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무령왕을 위한 첫 번째 제사상에는 청동 접시에, 8월에 잡은 은어를 올리고, 흑유병 1개와 청자잔과 청동잔을 1개씩 올려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복원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무령왕릉의 널길에서는 약 45cm의 제사상 편(祭臺片)이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청동잔 4점과 청동접시 2점, 주칙기편, 젓가락 등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제사상 윗면에는 그릇들이 놓였던 굽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위 청동잔과 접시의 굽 크기가 꼭 맞는다고 하며 제사 그릇은 세트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로써 널길에서 무령왕의 두 번째 제사가 모셔진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널문 앞에서는 청동완(靑銅?) 2점과 귀가 6개 달린 청자항아리 2점, 청동숟가락 2점, 제사상으로 추정되는 나무 편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널문을 폐쇄하기 전 마지막으로 지낸 제사상 차림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각 그릇과 숟가락이 2점씩 출토된 점으로 보아 처음 무령왕을 안장할 때 차려진 제사상이 왕비를 추가로 안장하면서 다시 차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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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릉의 진묘수는 무령왕릉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무령왕의 영혼을 사후의 신선세계로 인도(승선 昇仙)하는 안내자이다.


무령왕릉의 연도에서 발견된 진묘수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진묘수는 뿔과 날개가 달린 상상의 동물로 무덤을 지키고 죽은 자의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도교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무령왕릉의 진묘수는 국내에서 발견된 유일한 사례라고 하며, 묘지석과 같은 각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의 특별전에 전시된 모든 전시물을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전시 유물 한 점 한 점에서 보이지 않는 옛사람들의 장례와 제사 풍습을 알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는 오는 12월 10일(일)까지 이어지니, 꼭 방문하셔서 관람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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