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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경의 ‘역사 그리고 문학의 길’을 걷다.

2023.09.13(수) 20:23:41 | 들꽃지기 (이메일주소:psh3441@hanmail.net
               	psh3441@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1

논산 강경의 ‘역사 그리고 문학의 길’은 강경 쪽 황산대교 옆에 있는 임리정을 시작으로 하여 죽림서원, 팔괘정, 강경포구, 강경산소금문학관, 해조문, 옥녀봉 봉수대, 소금집문화교양공간, 노을 속 강경읍 조망까지의 여정입니다. 거리는 총 1.4km정도라 순서대로 천천히 걸으면서 풍경 속 역사와 문학에 관련된 유산들을 여유를 가지고 관람을 해도 2~3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이 길은 강경 곁을 흐르는 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풍광으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답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2<임리정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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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리정>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

현판의 이름인 임리정은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은 것같이 하라." 라는 시경의 구절을 따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서해를 향해 유장하게 흐르는 금강이 한눈에 조망이 되는 곳에 위치한 임리정은 동방 18현의 한 분인 사계 김장생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사계 김장생은 이곳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숙박을 할 수 있도록 임리정 안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온돌방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4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5
<죽림서원>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3

임리정을 관람한 후 돌계단을 내려오면 오른쪽에 죽림서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조 4년(1626)에 창건이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소실되었다가 광복 후에 제단을 설치하고 1965년에 사우를 복원하였으며 이곳에는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6인을 제향하고 있습니다.
이곳 죽림서원은 주로 주기학파였던 노론의 핵심멤버들인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같은 인물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주기론이란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 철학이었기에 상업·실용에 관심 많이 기울였을 것입니다. 이곳 강경이 조선시대에는 많은 배가 드나드는 물류의 중심지였다는 점과 노론의 주요 거점이었던 죽림서원의 존재가 결코 우연의 산물은 아닐 것입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6
<팔괘정>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86-1

죽림서원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금강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팔괘정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팔괘정은 노론의 거두인 우암 송시열이 지었으며,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임리정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그런데 임리정을 건립한 사계 김장생이 송시열의 스승이었다고 하니 송시열의 스승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두 정자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 오늘 날의 ‘스승의 날’이 정해진 계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실재로 ‘스승의 날’이 강경여자중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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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 포구>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포구길

우리나라에서 법원, 검찰청, 경찰서 등의 공공기관이 소재하고 있는 읍 소재지로는 강경이 유일할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1평양, 2강경, 3대구'라는 표현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강경의 위상이 대단했으며, 전성기에는 인구가 3만 명에 달했고 유동인구는 10만 명에 달했을 만큼 번성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강경이 금강을 토대로 수로와 육로를 잇는 큰 포구였기 때문이며, 금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서해의 수산물 및 소금, 그리고 젓갈이 유통되는 조선 최대의 시장이었던 곳입니다.
그러던 강경이 부산항, 인천항, 경부고속도로, 경인선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인구 7,648명의 평범한 읍 소재지가 되었고, 강경 포구는 옛 영화를 역사로만 간직한 채로 서해를 향해 유장히 흐르는 금강을 쓸쓸히 품고 있을 뿐입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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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산소금문학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포구길 38

금강 변 강경포구 바로 곁에 소설가 박범신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강경산소금문학관이 있습니다. 강경산은 옥녀봉의 옛 이름입니다.
금강에 맞닿아서 해발 44m의 옥녀봉 자락에 조성된 강경산소금문학관은 강경이 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 박범신의 장편 소설 ‘소금’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이곳 문학관은 박범신의 작품들이 잘 전시되어 있으며, 북콘서트나 문학제 등이 열리기도 하고, 인증샷을 담아갈 수 있는 빈 의자도 놓여 있습니다. 담소를 나누며 책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는 북카페도 마련되어 있지만, 이곳 문학관의 백미는 옥상에서 바라다보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지는 금강의 일몰 풍경일 것입니다. 포구 쪽 금강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으면, 바쁜 일상으로 어깨에 내려앉은 삶의 무게가 어느 순간 가벼워지는 힐링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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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문>

강경산소금문학관 뒤쪽으로 나 있는 나무 데크길을 따라 1~2분 정도만 오르면 커다란 바위 면에 해조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해조문은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으로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원리를 전통사상에 따라 풀이하고 처음으로 만조시각과 함께 물의 높이를 다루고 그것을 계량화하여 표시한 조석표입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12<옥녀봉 정상의 포토존>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13
<옥녀봉 봉수대>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해조문에서 다시 나무 데크길을 따라 1~2분 거리의 옥녀봉 정상으로 오르면 봉수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정상에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는데, 노을의 ‘을’의 ‘ㅇ’에 해를 담아 촬영을 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답니다.
봉수대가 있는 옥녀봉 정상이 비록 해발 44m에 불과하지만 주변이 평야지역이라서 그런지 사방이 멀리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높지 않은 옥녀봉에 봉수대가 세워져 있고, 나라에 위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밝혀 급보를 전하던 일을 맡아했던 곳입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14
<소금집문화교양공간>

봉수대를 관람한 후 강경산소금문학관 반대쪽, 강경읍으로 내려가는 길을 1분 정도조금만 따라 내려가면 소금집이 있습니다.
소금집은 박범신 작가의 소설인 ‘소금’의 배경이 된 집으로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소금’에서 주인공 선명우가 가출한 후 새로운 삶을 열어갔던 보금자리로 설정된 집이라고 합니다.
 
강경의역사그리고문학의길을걷다 15<옥녀봉에서 바라다본 강경포구 풍경>
 
여름의 흔적처럼 아직 한낮의 날씨는 후텁지근하지만,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도 지났고 머잖아 본격적인 가을로 들어서는 추분도 지나면 어느 곳이든 나들이 하기에 발걸음이 사뿐해질 것입니다. 그때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역사와 문학, 그리고 문화가 가득한 이곳 작은 읍 소재지인 강경을 찾아서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가져 보세요. 알찬 힐링의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임리정>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
<죽림서원>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3
<팔괘정>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86-1
<강경 포구>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포구길
<강경산소금문학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포구길 38
<옥녀봉 봉수대>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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