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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산 김환구의 첫째 딸 조선 영조와 인연이 되어 와비가 되다.

2023.09.05(화) 19:26:17 | 지민이의 식객 (이메일주소:chdspeed@daum.net
               	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인연이 되어 연인이 되는데 시간 혹은 나이가 중요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그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연(戀)과 이어진다는 의미의 연(緣)이 합쳐져야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상대의 배우자가 되어 마음을 나누게 된다. 무수리 출신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적지 않은 위기를 겪으면서 살아왔던 사람이 왕이 되었다. 그는 신임옥사가 일어나면서 죽을 위기까지 놓이기도 했지만 장희빈의 아들이었던 경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3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바로 영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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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두 번째 배우자로 많은 나이 차이에 혼례를 올린 사람의 고택이 서산에 있다. 헤뚜 쁘라띠아야(hetu pratyaya)라는 산스크리트어로 표현되는 인연은 그녀와 영조를 이어주었다. 씨앗을 싹을 틔울 때 그 씨앗을 인으로 보고 다양한 조건을 연으로 본다. 그녀는 경주김씨 가문인 김한구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영조 35년(1759) 15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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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1650년에 경주 김 씨였던 신하 김홍욱이 효종에게 하사 받은 집이다. 그 후로 약 100년 후에 정순왕후는 여주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후손이 16대를 걸쳐서 살아오고 있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갖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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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가 자랄 때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고목만이 그 시절의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너무나 따뜻하게 비추어서 땀이 흐를 때 잠시 이곳을 들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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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왕실로 들어갈 때에는 조선왕실은 그렇게 좋은 분위기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가 혼례를 올리기 전인 1743년(영조 19년) 1월 3일 영조의 기대를 한껏 받았던 사도세자는 관례를 치렀다. 1750년, 첫아들인 의소세손(懿昭世孫) 정(?)을 낳았지만 2년 뒤에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둘째 아들 산(?)을 낳았다. 이산이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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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순왕후 생가는 관리가 잘되어 있다.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은 조심스럽게 돌아보지만 사랑채가 자리한 곳을 보면 정원에 꽤나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왕실로 들어가기 4년 전인 1755년(영조 31년) 경에는 사도세자의 정신질환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더 이상 해소되지 못할 만큼 악화되었을 때 관례를 올리게 된다. 그리고 3년 뒤에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이 1762년(영조 38년) 윤 5월 13일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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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있어서 수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정순왕후는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되었고 영조의 사후에 정조 즉위 후 왕대비가 되었으나 정조와 대립하였다. 정순왕후는 매우 영특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정치적인 활동도 했는데 정조가 강화도에 귀양 가 있던 이복동생 은언군(恩彦君)을 사적(私的)으로 만나고 편의를 봐주자 신하들의 공론을 이끌어내며 정조와 맞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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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는 영조와 남자로서의 인연이 되었고 정조와는 아들과 같은 인연이 되었다. 정조는 은언군을 많이 배려했었는데 그의 손자인 원범은 정순왕후가 왕대비로 수렴청정을 했던 순조의 손자인 이환 즉 헌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강화도령 철종이다. 알다시피 철종다음에는 대원군의 아들이 고종에 왕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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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여행하듯이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항상 이 집의 관문처럼 느껴지는 고목을 바라본다. 여름의 향기가 이곳에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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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배다리 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비 맞지 않고 처마 밑에 오리를 달렸다는 기와집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오백 년 전에 안주목사 김연이 난을 평정한 후 경주 김 씨가 자리를 잡아 정승을 서른일곱 명 배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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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는 목화꽃을 사랑했다고 한다. 목화꽃은 시집보낼 딸 있는 집에서 꼭 심었다는 꽃이다. 역사책에서 살펴본다면 원나라로 가서  귀양살이를 하는 중 목화나무를 알게 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그 씨 몇 개를 따서 붓뚜껑에 넣어 가지고 왔다는 문익점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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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되어 연인이 된 영조와의 사랑은 어떠했는지는 모두는 알 수는 없지만 영조의 사랑은 남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인연이 되었지만 연인이 된 사람과 인연이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정적과 대립각을 세웠지만 그녀 역시 역사라는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정순황후 생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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