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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선비의 숨결이 살아있는 계룡 모원재

2023.08.31(목) 23:53:06 | 가을하늘 (이메일주소:kms2380@hanmail.net
               	kms238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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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한 김국광 선생의 재실인 모원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계룡시 왕대리에 위치하는데요. 인조 원년(1623)에 지은 모원재는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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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광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정치인입니다. 본관은 광산으로 자는 관경, 호는 서석, 세종 23년(144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세조의 즉위를 도와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어 『경국대전』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벼슬이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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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원재는 김국광의 분묘 조성후에 건립되었고,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0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김국광이 태어난 왕대리와 그 주변 마을 사람들은 매년 김매기를 마치고 백중날이 되면 김국광의 묘를 참배했고 참배 후 한바탕 신나게 놀았는데, 이것이 놀이의 계기가 됐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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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논산시 연산면에는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인 연산 백중놀이는 김국광을 기리기 위해 이곳 왕대리에서 시작되었고, 원래 명칭은 '왕대리 백중놀이'라고 합니다. 이 놀이는 김국광의 후손들이 왕대리에서 연산 일대로 이사를 하면서 연산 장터에서 백중놀이를 벌이게 됐고 온갖 장사꾼들,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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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놀이는 김국광의 무덤이 있는 왕대리가 최고 어른으로 각 마을의 두레패를 통솔 주관하며, 김국광의 집에서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장만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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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원재 뒤쪽에는 '좌의정 김공 묘역'이라고 돌로 만든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표지석 너머로 넓게 펼쳐진 묘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광산 김씨 문중의 규모와 위력이 느껴졌는데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로 알려진 사계 김장생도 김국광의 후손입니다. 이 가문에서 대제학 여덟 명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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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상 좋아 보이는 김국광의 묘소는 부인인 장수황 씨의 묘와 함께 상하분으로 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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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을 둘러 보존되고 있는 김국광의 신도비는 구 신도비와 신 신도비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비는 1489년(성종 20)에 세워졌고, 신비는 1726년 (영조 2)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구 신도비의 경우 마모가 심하며 신 신도비는 현재 보존이 잘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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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모원재 뒤편에 있는 왕대산 초입인데요. 시원한 솔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솔바람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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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솔바람 길은 왕대산을 배경으로 조성되었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모원재에서 가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모원재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2길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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