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역사

홍성 천년 역사의 중심, 홍주읍성

홍주성 천년여행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

2023.08.16(수) 15:48:48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인 홍성군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1914년까지 홍주라고 불리웠으나 일제강점기에 홍주군과 결성군을 통합하여 홍성군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서해안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홍성군은 오랜 세월 지역의 행정·교통·문화 중심지로 기능해왔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1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천년을 한결같이 서해안 지역의 중심을 지켜오며 찬란한 천년 역사를 품에 안고 있는 내포의 큰 고을 홍주를 돌아보는 길입니다.
홍주성 천년여행길 중에서 홍성읍성 인근에서는 홍주아문과 오관리 느티나무, 안회당, 여하정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2

홍주아문(洪州衙門)에서 아문(衙門)은 관아(官衙)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홍주아문은 역대 홍주목사가 행정을 하던 안회당(安懷堂)의 바깥 문으로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세운 것입니다. 홍주아문은 우리 나라 아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는 군청 정문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3
 
홍주아문 앞 작은 뜰에는 오래된 왕버들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4

홍주아문을 들어서니 유명한 오관리 느티나무 두 그루가 홍성군 청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수령 65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2본으로, 고려 공민왕이 심은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두 나무의 가지는 서로 얽혀 있으며 북쪽 나무가 좀 더 크고 남쪽 나무는 1970년 무렵 군청에 난 화재로 가지의 상당 부분이 타버린 상태입니다.
고을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무가 밤새 울어, 목민관이 서둘러 대책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홍주에 부임하는 관리들은 제일 먼저 이 나무 아래에 제물을 차리고 고을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고 하며, 현재까지도 제물을 차려놓았던 기대(器臺)가 남아 있습니다.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5
 
안회당은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東軒)입니다. 전체 22칸 규모의 목조 기와건물로 1678년(숙종 4)에 홍주군의 정사당(政事堂)으로 건립하였습니다.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870년(고종 7)년에 동헌을 개축하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안회당(安懷堂)이라는 편액(扁額)을 하사받았습니다. 현판은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안회당을 부분 중수하면서 현판과 당기(堂記)를 새로 조각하였다고 합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6

여하정은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으로 사용된 안회당의 뒤뜰에 있습니다. 1896년(고종 33)에 홍주목사 이승우(李勝宇)가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이 정각은 못 위에 떠 있는 수상 정자로 아담한 규모입니다. 여하정은 홍성 팔경 중 이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홍주 목사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관리들과 나랏일을 이야기하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7

여하정에는 수령이 300년이나 되어 보호수로 지정된 커다란 왕버들이 버팀목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8

안회당과 여하정 주변 잔디밭에는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많고 쉼터도 있어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됩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9
 
성곽 한쪽에는 홍주읍성 수구(水口)가 있습니다. 이 수구는 성 안쪽에서 바깥쪽을 물을 배수시킬 목적으로 성벽을 관통하여 축조된 시설이라고 합니다. 홍주읍성의 수로는 월계천의 물을 끌어들려 동서로 관통시키면서 동벽과 서벽에 각 1개씩의 수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문의 입구에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외부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문 시설 또는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전국의 지방 읍성 중 처음으로 확인된 수문이라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10
  
이제 홍주읍성 성곽을 따라 잠시 돌아봅니다. 홍주읍성(홍주성)은 백제시대의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처음 축조된 연대가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새로 축조되었으며 그후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11

1906년에는 이 성에서 의병이 일본군과 치열한 홍주성 전투를 벌였습니다. 105년에 민종식(閔宗植, 1861∼1917) 등이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이듬해 5월 19일에 1,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6문의 화포로 홍주성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덕산(德山)으로 쫓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12
 
성곽은 총 1.7km에 이르는데 지금은 800여 m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많이 헐린 데다 1978년 홍성 지진 때도 일부 무너졌다고 합니다. 홍주성 사방으로 문이 각각 있었는데 서문과 북문은 소실되어 터만 남고, 남문은 2013년 12월 홍화문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동문인 조양문만이 일제강점기 홍성 사람들의 노력으로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13

성 안에는 홍주 감옥이 있습니다. 조선 중엽 이후 천주교도들을 가두워 두었던 곳인데요, 이곳에서 무려 113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감옥 안에는 천주교도들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천주교 홍성 성지로 지정되어 많은 천주교인이 순례 장소로 찾고 있습니다.

홍성천년역사의중심홍주읍성 14

홍주성역사관은 홍성의 위인을 시대별로 소개하고, '홍주와 부보상'이라는 주제로 부보상의 유품과 활동상, 천주교 박해와 홍주의병, 홍성의 독립운동 등 고려시대 이전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홍성 천년 역사를 간직한 홍주읍성 내에 있는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을 돌아보고 성곽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홍성은 예나 지금이나 충청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지역의 행정·교통·문화 중심지 역할을 해 왔으며 오늘날에는 내포신도시가 건설되어 충청남도 도청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홍성은 앞으로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홍주읍성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0-1

 

대로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대로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22775540405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