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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천년 여행길 따라 둘러보는 홍주읍성

2023.07.04(화) 10:01:29 | 임데라스 (이메일주소:limdelas@naver.com
               	limdelas@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년여행길따라둘러보는홍주읍성 1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무궁화꽃이 활짝핀 7월입니다. 7월이면 산과 바다 등 시원한 곳을 찾아 휴가를 가기도 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아이들과 함께 방학숙제도 할겸 체험과 견학을 많이 할수 있는 장소를 찾아 떠나는 계절입니다. 특히 우리지역 충남은 역사적인 인물과 장소가 많은 지역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면 좋은 장소가 많은데 그중에서 한 곳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이들과 많이 찾는 곳이 천안의 독립기념관, 공주 또는 부여박물관을 많이 찾아주시는데 이번에 제가 소개할 곳은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고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홍성군에 있는 '홍주읍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천년여행길따라둘러보는홍주읍성 2

먼저 네비게이션서 검색할때 '홍주성'이라고 검색하면 홍성에 있는 '홍주성'이라는 중국요리집이 나오는 관계로 꼭 '홍주읍성'이라고 검색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보통 홍주성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고 필자도 그렇게 검색하고 찾아갔더니 식당으로 안내하여 찾아오시는 분들이 헛걸음 하지 않도록 안내해드립니다.

어렵게 홍주읍성을 찾아 갔고 뜨거운 여름이라 홍주읍성에 있는 '홍주성역사관'을 먼저 둘러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매주 월요일은 휴관인 관계로 내부는 볼수 없었습니다. 월요일에는 휴관임을 꼭 기억하시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천년여행길따라둘러보는홍주읍성 3
 
홍주성역사관을 들어가지 못해 돌아서 나올까 하다 보니 역사관에서 바로 상층으로 연결된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어 그곳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아래에서 볼 때는 그냥 이동 통로인가 싶은 장소가 올라와 보니 옥상정원을 꾸며놓고 바로 홍주읍성 성곽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역사관을 이용하신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2층 옥상으로 올라 올 수 있는데 월요일은 휴관인 관계로 데크길을 따라 이동하였습니다.
 
옥상정원은 홍주성역사관의 규모가 크지 않기에 넓지는 않았고 높지도 않았으나 사방으로 탁 트여있어 더운 날씨였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홍주읍성의 솔바람을 맞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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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정원과 연결된 홍주읍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원래 계획은 역사관이었으나 홍주읍성 성곽길 내부에 잘 꾸며진 잔디밭이 보여 가까지 가보았는데 파크골프장이었습니다. 어르신들 여가활용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는 곳으로 곳곳에 쉼터도 조성되어 있어 편안하게 취미 생활을 하실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다만 한낮에는 그늘이 부족해 이용하기에는 좀 어려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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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정원에서 시원하게 불어준 솔바람이 바로 성곽 안에 조성되어 있는 소나무 숲의 영향이었습니다. 주변의 나즈막한 평지와 잔디밭과는 달리 한켠에 하늘 높이 쭉 뻗어있는 십수년이 되어 있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곳의 역사를 알 것 같았습니다. 소나무 아래는 그늘이 풍부하여 길이 있다면 저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소나무 아래에는 이동 하는 길이 없어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나무들도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이 송림은 풍수지리상으로 홍주성의 남쪽부터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조성한 것으로 세월이 지나면서 소나무가 울창해지고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지자 홍주성과 송림의 가장 높은 곳에 정자를 세워 이를 송정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922년 일제 시대에 그 송정이라는 정자를 없애고 여기에 신명신사를 세워 홍성군민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해방이후 홍성군민이 신명신사를 없애버리고 여기에 백야 김좌진 장군 추념비를 세웠으나 이후 추념비는 김좌진 생가에 조성된 백야공원으로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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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에는 성곽둘레길 뿐만 아니라 역사와 연결된 다양한 것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성곽의 주변을 둘러보던 중 기념비를 만나볼 수 있는데 바로 '병오항일의병 기념비'라고합니다.

1906년 병오항일의병이 일어났을 당시 홍주성을 탈환하여 지키고 있던 의병을 공격하다 관군과 일본군 일부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죽은 일본군을 위하여 1907년 김윤식이 시를 짓고 이완용이 글씨를 써서 이를 애도한다는 의미에서 애도지비 세웠다고 합니다. 그후 해방이 되자 애도지비를 철거하여 땅에 묻고 그 자리에 다시 병오항일의병기념비을 세운것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홍성군에서는 이 주변을 홍주의병공원으로 지정하여 항일의병을 추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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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에서 바라본 홍성군 전경]

또한 우리나라에서 매우 유명한 1978년에 홍성군에 진도 5.0의 큰 지진이 일어났고 그 지진의 진앙지가 홍주의병공원이라고 하는데 그 영향으로 홍주성의 성벽도 일부 무너지고 기념비도 조금 기울져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다행이 아직까지는 특별한 이상 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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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 성곽길에 올라서면 홍성군의 남쪽 방향이 시원하게 보여집니다. 성곽둘레길을 보면 안으로는 토성, 성곽 밖에는 석축을 쌓아 놓은 이중구조의 성곽으로 보여집니다. 성곽길을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어 길지는 않지만 어렵지 않게 성곽을 따라 걸어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성곽둘레길이 도심 한복판 나즈막하게 있는 관계로 산꼭대기에 있는 토성들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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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은 현재 사적 제231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성곽으로 길이가 약 1,772m성벽 중 약 810m의 돌로 쌓은 성벽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초기 지방읍성을 새로운 규정에 맞추어 쌓게 되었을 때 홍주읍성도 새로 쌓아 1451년에 완성하였으며, 이때의 기록에 홍주읍성은 문이 4개였으며 그 중 1개는 '옹성'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 이후 홍주읍성은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쳐 확장하였고 1870년 고종때 홍주목사 한웅필이 대대적으로 홍주읍성을 보수하고 새로 정비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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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흥선대원군이 직접 써서 내려준 현판을  받았는데 동문은 홍성군 읍내에 있는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양화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남문 이름은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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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최근 2007년~2009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있는 성문으로 확인 되었고 옹성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며 현재의 남문으로 있는 홍화문은 2013년 복원된것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곳입니다. 

방문한 날 보니 이 남문을 통해 홍성군청 방면에서 반대편으로 이동할시에 이 홍화문을 통해 이동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았는데 최근 복원했지만 가장 많은 사람에게 활용도가 높은 곳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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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문울 지나 내려오는 길 좌측편에는 몇개의 비석이 있습니다. 이 비석은 홍주성 수성비로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66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비석은 1824년 황폐된 홍주읍성 보수 완공울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본래 홍주읍성 조양문 앞에 있었으며 비문에는 홍주읍성의 축조과정이 적혀있습니다.

홍성 지역은 바닷가에 있어서 서울이 서남쪽의 중요한 지역으로  비의 뒷면에는 성쌓기 작업을 주도하고 감독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있어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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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부재]

또한 조선초기 억불숭유정책을 시행하면서 많은 사찰 소유의 토지와 노비가 몰수되었는데 이 당시 탑을 부수고 나왔던 부재들을 관아 건물과 유교시설을 짓는데 사용했다고 하는데 홍주읍성 주변의 사찰부재들도 홍주성 관아와 성벽을 쌓았을때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부재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사찰부재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홍주읍성의 동문인 조양문 앞에 있던 홍주읍성 비석군을 과거 홍성의 입구였던 금마 앞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홍주읍성 안에 있는 홍주성역사관 옆으로 옮겨놓은 이 비석들은 조선 중후기에 홍주목사를 지낸 5명의 선정비로 북쪽부터 경섬(1562~1620), 김희신(1761~?), 윤동원(1685~1741), 유의(1734~?), 변시익(1598~1653)순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경섬은 1607년 임진왜란 이후 첫 번째 사절로 일본으로 넘어가 포로 1,340명을 데리고 왔고, 후에 홍주목사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김희신은 1825년 홍주목사로 근무하였으며, 윤동원은 1735년 홍주목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나라에서 79세인 어머니를 모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의는 1782년까지 홍주목사로 부임하였는데 그의 검소함과 청렴결백함에 감탄한 정약용이 청백리의 표상으로 '목민심서'에 기록되었으며, 변시익은 17세기 중반 홍주목사로 임명되어 근무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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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아쉽게 둘러보지 못한 홍주성역사관은 홍주 천년 역사를 한번에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2011년에 개관하였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천고낙지의 땅 홍주'를 주제로 홍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아보는 역사의 공간으로 홍성이 배출한 역사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알려주는 장소로 활영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지난 6월말부터 11월까지 박물관 및 홍성의 역사에 관심있는 지역민 누구든지 찾아가서 강좌를 들을수 있는 박물관대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월 진행되고 있으며 날짜는 아래 사진을 참고하셔서 방문 및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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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최근 내포신도시가 개발되고 혁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 역사에 이름만 대면 누가 알수 있는 한용운, 성삼문, 최영장군, 김좌진 장군까지 모두 홍성출신지역으로 그만큼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입니다.
 
홍성에 방문한다면 홍성의 역사인물들과 홍주읍성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수 있는 홍주읍성을 방문해서 홍주천년의 역사를 제대로 느껴보시고 가시길 추천해드립니다.


홍주읍성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0-1
전화 : 041-63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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