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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역사문화의 숨결이 가득한 부여 남령근린공원

2023.06.04(일) 16:22:55 | 들꽃지기 (이메일주소:psh3441@hanmail.net
               	psh3441@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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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공원이란 주민의 생활권 안에 있으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으로서 지역생활권 거주자의 보건이나 휴양, 정서생활의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는 공원을 의미합니다. 도시나 지방 어느 곳이든지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이면 대부분 그런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부여읍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남령근린공원 역시 누구나 언제든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근린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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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규모도 작고 높지도 않은 남령근린공원은 여느 근린공원과는 다르게 공원 전체가 역사문화와 순국열사들의 의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부여향교, 의열사, 독립운동애국지사추모비, 충의사, 순국지사유기섭기적비, 애국지사이호철기념비 등이 작은 공원 곳곳에서 부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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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와 순국열사들의 의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 부여의 원도심에 있는 남령근린공원이 접근로와 주변 환경이 멋지고 의미 있게 정비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관람하는 내내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부여군에서 남령근린공원 조성사업을 추진, 시행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담아온 남령근린공원 내의 역사문화 유적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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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향교 외삼문>

남령근린공원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부여향교는 예전에는 한가하고 외졌겠지만 지금은 도시 한가운데로 변해서 접근이 용이합니다. 부여 주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이 되는 부여향교는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수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가운데 태극무늬가 선명한 외삼문은 부여향교의 정문에 해당하며, 밖에 세 개의 문으로 되어 있어서 외삼문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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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부여 향교도 일반 향교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인 전학후묘(典學後廟)따라 맨 앞쪽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여 향교의 정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명륜당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지방 유생들의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중심 건물답게 팔작지붕의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자태를 지닌 강학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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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삼문>

향교나 서원의 외삼문이나 내삼문은 보통 부여 향교의 외삼문처럼 합체된 모습이 일반적인데, 부여향교의 내삼문은 독특하게도 문과 오르내리는 길도 각각 분리되어 있습니다. 향교나 서원을 소개할 때마다 늘 드리는 말씀, 삼문의 가운데는 신이 통과하는 문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오른쪽의 동쪽 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왼쪽의 서쪽 문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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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내삼문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보입니다. 향교의 가장 뒤쪽,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제향공간답게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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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애국지사추모비와 충의사>

약간의 오르막길을 올라 공원에 이르면 독립운동애국지사추모비와 충의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부여군과 광복회부여군지회가 중심이 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항거하다가 순국하신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우고(1983년) 충의사를 건립(2022년)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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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사>

남령근린공원의 남쪽에 위치한 의열사는 부여 향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 의열사 담장 뒤에서 바라다보면 부여 전체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납니다.
의열사는 백제의 충신인 성충과 흥수, 계백 그리고 고려 말의 충신인 이존오를 기리기 위해 부여 현감인 홍가신이 1575년에 건립한 사당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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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사비>

의열사 입구에 세워진 의열사비는 1723년에 의열사를 건립하게 된 과정과 그곳에 모신 인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비석의 몸체를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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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선 열사시>

남령근린공원에 오르면 의열사 뒤편, 그리고 독립운동애국지사추모비 앞에 구한말 의병이었던 최운선의 시 ‘광복병막설야(光復兵幕雪夜)’가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광복을 위해 나선 싸움터 군막에서 눈 내리는 밤에’의 뜻이며, 시를 읽으면서 국권 침탈에 거의 맨주먹으로 싸워 죽음으로 대항했던 선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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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령근린공원 오르는 길>

공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곳에 있으며, 그 중 북쪽으로 오르는 길가엔 초롱꽃이 하얗게 피어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치 남령근린공원에 서려있는 열사들의 의기가 영롱한 초롱꽃으로 피어서 결단코 왜적들의 침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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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지사유기섭기적비, 애국지사이호철기념비>

공원 오르는 초입 길옆에 초롱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그 곁에 애국지사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애국지사 유기섭과 이호철은 부여 출신으로 비밀결사 및 만세운동, 그리고 농민과 아동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고인들의 공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정비되지 않은 길가 잡초 더미 속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어서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애국지사의 활동 내용을 정성껏 마음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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