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계백장군 유적지 -군사박물관
논산으로 계백 장군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은 발길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전쟁의 역사 상 가장 비극적인 패배의 주인공이면서도 명예는 잃지 않은 계백 장군의 묘역과 군사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따갑고 높은 기온에 때 이른 벚꽃이 만개해 아름답지만 처연한 풍경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군사 박물관은 리모델링 중이라 임시 휴관 중이라 내부는 관람하지 못해서 서운했어요. 다음 기회에 다시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유신이 이끄는 나당 연합군의 기세에도 굴하지 않던 계백은 다섯 번을 싸워서 네 번을 이기고도 마지막 다섯번째 패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가매장 했다고 전해집니다. 논산시에서는 선조실록과 광해군 일기에 계백 장군과 역대 명장 충신의 묘를 보수하고 부근에서 짐승을 먹이는 것을 금지한 내용이 실려 있다는 근거로 계백 장군 묘역을 조성했습니다.
40∼50년 전 묘가 노출되었을 때 철제 무기가 나온 적도 있으며, 주위의 지명이 ¹충장산(忠莊山)·²충훈산(忠勳山) 또는 수락산(首落山) 등으로 나타나고, 묘소 일대를 ‘가장(假葬)골³’이라고 부르는 등 지명도 장군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묘소 부근에 있는 충곡서원(忠谷書院)에서 무장(武將)인 장군을 주벽에 모시고 있는 것도 참조했습니다.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충장(忠莊) :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와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
2. 충훈(忠勳) :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세운 공로.
3. 가장(假葬) : 장례를 치지르 전에 임시로 매장을 하여둔 것을 일컫는 말.
부여군 충화면에는 계백 장군의 탄생 설화와 함께 장군이 석등을 켜고 수련했다는 천등산이 있습니다.
정작 그가 살아서 훈련했던 곳에는 기념비 한 기 없이 구전만 전하는데 죽음을 맞이한 곳에는 후세들이 기념할 만한 인프라를 다 갖춰놓았군요.
쏜 화살보다 빨리 달리는 훈련을 하며 천등산 능선을 질주하는 천 오백 년 전의 장군의 기개가 그대로 전해지는 동상입니다. 계백 장군의 동상을 자주 보는 부여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이곳의 동상에서 느껴지는
비애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곧게 뻗어서 더 서러운 소나무 산책길입니다.
한결같이 외롭고 서러워 보이면서도 장군을 닮아 기개 만큼은 올곧은 소나무들입니다.
이곳에 서면 천 오백 년의 시간을 넘어 계백 장군의 통한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패자에게는 가혹한 법입니다. 하지만 계백 장군은 다르다. 부인과 가족까지 죽이고 전선에 임한 그의 정신과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의 어린 화랑들의 기개에 베푼 관용과 장렬한 최후는 후세 사람들을 감동시키에 충분합니다. 계백의 죽음으로 백제는 망국이 되어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계백은 패장이 아니라 충신이며 용맹한 장군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계백은 탄생 설화와 더불어 수많은 전설과 민담으로 변주되어 지금까지 후대에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그만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물상이기 때문이지요. 전쟁에서는 덕장이었고 용장이었던 그는 충신이기까지 한 뛰어난 인물입니다.
버드나무가 수려하고 경관이 잘 조성된 호수 공원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합니다.
계백 장군 묘역에 와 보니 패망한 국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백제의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백제는 사라졌어도 계백의 이름은 크게 남겨놓았더군요.
계백장군 유적지-군사박물관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