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피렌체보다 화려하다는 부여, 그 두 번째 이야기

2023.02.14(화) 09:49:29 | 설산 (이메일주소:ds3keb@naver.com
               	ds3keb@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만수산 자연휴양림 그리고 무한한 절집 무량사

부여를 제대로 보려면 2박 3일은 잡아야 할 것 같다. 부여 10경이라고 정해놓은 관광지 중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해도 차로 30분 남짓이면 될 만큼 부여는 작은 읍이지만, 그만큼 둘러볼 곳이 많고 박물관 같은 곳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래서 하룻밤 머물게 된 곳이 부여 외산면에 있는 만수산 자연휴양림이다.   

만수산 자연휴양림
▲ 만수산 자연휴양림

날이 저물 무렵 도착한 산속 자연휴양림은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밖으로 나갔더니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진다.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잠을 자다 산속 통나무집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날이 밝아서야 잠에서 깼다.
 
“당신의 발밑에는 피렌체보다 더 화려한 부여가 있다”라는 말에 떠난 부여 여행 두 번째 날 첫 일정은 유홍준 전문화재 청장의 「산사순례」에 등장하는 절집 스무 군데 중 하나인 만수산 무량사다. 밤사이 약간 비가 내렸다가 맑게 갠 푸른 하늘과 상큼한 공기가 코끝에 전해오는 신선한 아침이다.
 
절집의 바깥문인 무량사 일주문은 곧게 뻗은 도로 한복판에 서 있어 의아하다. 그러더라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문의 나무 기둥에 커다란 옹이가 박힌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멋스럽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무량사구지에서 앞을 보고 뒤를 돌아다 봐도 만수산 깊은 골짜기일 것 같은데 절의 아랫마을에서부터 이렇게 너른 분지가 다 있구나 싶다.
 
무량사 일주문
▲ 무량사 일주문

무량사구지
▲ 무량사구지

겨우내 얼어있었을 산사 앞 개울에는 얼음이 녹고 물이 졸졸 흐른다. 이제 춘삼월도 머지않았으니 이 개울에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에 새잎이 돋아나는 봄날이 되면 얼마나 고울까 싶다. 개울 위쪽에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가 있다. 김시습이 수양대군의 손을 잡지 않고 절개를 지키고 청빈한 삶을 살기 위해 스님이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생의 마지막을 이 무량사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에 유홍준 전 청장의 설명을 부연하면 “1천 년의 연륜을 갖고 있는 고찰에는 반드시 그 절집의 간판스타가 있게 마련인데 무량사의 주인공은 단연코 매월당 김시습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설잠 스님) 부도
▲ 매월당 김시습(설잠 스님) 부도

절집의 규모를 알 수 있고 폐사가 되더라도 남아있는 것이 사찰 입구에 서 있는 깃발을 걸기 위해 세운 당간지주라고 하는데 무량사 당간지주는 어른 키 두 배쯤은 되어 보이고 안내판에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하는데 기둥 가장자리에 테두리를 두른 당간지주는 모르긴 해도 흔치 않을 것 같다.

무량사 당간지주
▲ 무량사 당간지주

천왕문을 들어서니 시원스럽게 탁 트인 열린 공간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극락전은 위풍당당하고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탑과 석등, 종각 그리고 코고 작은 부속 건물들이 보는 사람의 눈과 같은 높이에 있어서 아늑하고 편안하다. 이른 아침임에도 예불을 드리는지 염불 소리와 함께 경내에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가 청아하다. 
 
무량사 천왕문
▲ 무량사 천왕문

천왕문에서 본 무량사 경내
▲ 천왕문에서 본 무량사 경내

극락전에서 예불드리는 모습
▲ 극락전에서 예불드리는 모습

천왕문과 일직선 이루는 석등과 석탑과 푸른 소나무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아침햇살을 받고 서 있는 극락전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이런 풍경이야말로 피렌체의 어느 것에 못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가까이 가서 본 극락전도 그렇고 오층석탑도, 석등도 ‘참, 잘생겼다’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냥 어슬렁거려도 좋을 것 같다.

무량사 극락전
▲ 무량사 극락전

무량사 오층석탑
▲ 무량사 오층석탑

무량사 오층석탑과 석등
▲ 무량사 오층석탑과 석등

무량사 범종각
▲ 무량사 범종각

무량사 극락전과 오층석탑, 석등
▲ 무량사 극락전과 오층석탑, 석등

무량사 영산전, 원통전
▲ 무량사 영산전, 원통전

극락전 뒤편 개울 건너에는 흔히 절집에서 보는 절집 건물이 아닌 것 같은 단청없는 3칸짜리 건물 한 채에 눈길이 간다. ‘청한당’이라고 김시습의 본래 호인 청한자(淸寒子)를 변형하여 붙인 선방 겸 손님방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 건물에 걸린 현판 글씨 중 '한(閒)'자를 뒤집어써서 붙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부러 들러보는 모양이다.

청한당과 현판
▲ 청한당과 현판

삼성각
▲ 삼성각

영정각 안 김시습 영정은 어디서 본듯하고 세 살 때부터 시를 지어 천재라 불리며 세종대왕의 관심을 받았던 김시습은 계유정난으로 사육신이 처형되자 시신을 수습하고 ‘설잠’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되어 그의 나이 31세 때 경주 남산 용장사에서 ‘김시습’ 하면 떠오르는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썼다고 한다. 이런 김시습이 말년에 이 절집에 머물러 내가 서 있는 땅을 밟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먹먹해진다.

영산전 석탑 안 작은 석불
▲ 영산전 석탑 안 작은 석불

천왕문으로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나름 여행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무엇하다 이제야 이렇게 아름다운 절집을 왔단 말인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구나 싶다.
 
천왕문을 나오면서 본 평온한 무량사 경내
▲ 천왕문을 나오면서 본 평온한 무량사 경내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이야기꾼 유홍준의 휴휴당 가는 길

무량사에서 나와 부여로 가는 길을 달리면서 ‘외산면’이라는 이정표가 왠지 낯설지 않다. 어디서 본듯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반교리’라는 지명을 보자 그제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에서 읽은 ‘내 고향 부여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도시에서 닷새, 시골에서 이틀’ 즉, 5도 2촌을 실현하기 위해 터를 잡은 곳이 부여 외산면 반교리였다는 기억이 떠올라 예정에 없던 반교마을로 들어섰다.
 
아무리 몇 가구 살지 않은 시골이라고 해도 오래전 책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집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누구한테 물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그렇게 헤매다 돌담 밑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앉아 있는 연로해 보이는 어르신한테 여쭤보았더니 “저기여, 저기로 쭉 가”라며 알려주시는데 얼마나 가라는 건지,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헤매다 보니 책을 통해서 내가 알고 있은 청장님이 꼭 지었을 것 같은 돌담 너머 대나무 숲 옆에, 진흙에 돌을 넣어 벽체를 만든 작은 집이 보이고 담 너머 보이는 마당에는 작은 문인석과 추사고택 마당에 있던 ‘石年’이 얼핏 보인다.

휴휴당
▲ 휴휴당

돌담을 따라가다 보니 나오는 대문 정낭에 사람이 없음을 알리는 대나무 두 개가 가로질러 있다. 감히 더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밖에서 사진 몇 장 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만약 청장님을 만났더라면 “나이 먹어보니 쉽지 않은데 언제까지 이럴뀨?”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휴휴당 정낭
▲ 휴휴당 정낭

휴휴당 앞마당
▲ 휴휴당 앞마당

여행을 마치고 ‘내 고향 부여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반교리에 돌이 많고 그 돌로 쌓은 돌담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데 왜 내 눈에는 안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쳤다. “이건 무효여. 새봄에 산벚꽃이 피면 다시 갈껴”라고…   


- 무량사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041-836-066)

 

설산님의 다른 기사 보기

[설산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