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규암면 신리마을 빈집에서 열린 설치미술 작가 윤보연의 전시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로42번길 2
'갤러리는 따로 없습니다. 빈집이 갤러리입니다.'라는 초대장을 받고 의아해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호기심과 인맥이라는 연결 고리로 전시장을 찾아갔다, 부여 규암면 신리 마을은 지난해 '마을이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라 이런 전시가 낯설지 않았다.
빈집 앞에는 전시라는 글씨가 소박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설치미술 자가 윤보연이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에 마련한 전시장 입구이다.
▲〔인벨류어블(inveluable)-인생수업〕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전시회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윤보연 작가
“쌀가마를 광에 넣을 때마다 표시한 거라네요. 쌀가마가 한 가마씩 여기에 들어가 쌓일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이 집 주인은요.”
바로 한 세대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깍듯한 디지털 세계 속에서 발견한 친근감이었다. 버려지고 오래되고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그 폐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것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 전시를 이끌어가는 힘이었다.
“이현자 님은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그 사람의 캐릭터를 가장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지요. 스마트폰에 저장된 마을 사람들을 다 꺼내놓았어요.”
신리마을 사람들이 거기에 다 모여있었다. 자신들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잡혀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도 읽어지는 사진들이었다. 이 현자님이 마을에 함께 살고 있기에 가능한 사진이었다.신리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얻은 답을 빈집의 유리창에 새겨 넣었다. 사라지는 아날로그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붙잡아 놓은 발상이 이채롭다.
“숟가락이죠. 제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숟가락 한 벌씩을 달라고 했지요. 거기에 이름도 새겼어요. 작품 이름이 ‘식구’잖아요.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식구라고 하는 데 의미가 있죠.”
가족이라는 말에 밀려 퇴색한 식구라는 단어를 새삼 발견한 것 같았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들이 모여 살았던 집에 오래된 사진들이 있고 숟가락들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고도 남았다. 빈집과 사진과 숟가락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전시장이 아니라 시골 외갓집에 온 건데요.”
“제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어요. 이런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과 살아왔던 세대들이 방방을 다니면서 작품들을 보다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듣고 마당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모닥불도 쬐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하는 일상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잘 정비된 갤러리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사라지고 소외된 것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손으로 빚은 세상인 아날로그를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세대가 문화의 주류로 등장할 날들을 앞두고 있다. 감성은 많이 겉멋은 뺀 따뜻한 공간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온 기분이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마음은 따뜻하고 다정한 곳으로 향하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