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역사

빈집이 통째로 전시장이 된다는 발상은 누가 했을까?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 빈집에서 열린 설치미술 작가 윤보연의 전시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로42번길 2

2023.01.02(월) 08:19:31 | 충화댁 (이메일주소:och0290@hanmail.net
               	och029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1


'갤러리는 따로 없습니다. 빈집이 갤러리입니다.'라는 초대장을 받고 의아해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호기심과 인맥이라는 연결 고리로 전시장을 찾아갔다, 부여 규암면 신리 마을은 지난해 '마을이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라 이런 전시가 낯설지 않았다.
빈집 앞에는 전시라는 글씨가 소박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설치미술 자가 윤보연이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에 마련한 전시장 입구이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2


자칫 쓰레기 더미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도 전시의 일부이다.
마을의 집집에서 내놓은 지난 사진들이 병 속에 들어있다. 알맹이를 털고 난 들깨 더미도 전시의 일부가 되었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3▲〔인벨류어블(inveluable)-인생수업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전시회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윤보연 작가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4


쌀가마를 광에 넣을 때마다 표시한 거라네요. 쌀가마가 한 가마씩 여기에 들어가 쌓일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이 집 주인은요.”
 

바로 한 세대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깍듯한 디지털 세계 속에서 발견한 친근감이었다. 버려지고 오래되고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그 폐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것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 전시를 이끌어가는 힘이었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5


광에 딸린 방 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

이현자 님은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그 사람의 캐릭터를 가장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지요. 스마트폰에 저장된 마을 사람들을 다 꺼내놓았어요.”

신리마을 사람들이 거기에 다 모여있었다. 자신들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잡혀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도 읽어지는 사진들이었다. 이 현자님이 마을에 함께 살고 있기에 가능한 사진이었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6

 

신리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얻은 답을 빈집의 유리창에 새겨 넣었다. 사라지는 아날로그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붙잡아 놓은 발상이 이채롭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7


부서져 있으면 부서진 그대로 얼룩지고 찢어지면 찢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 작품이 있었다
. 진작에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어서 꽃이 되었다고 주장한 것처럼, 내가 설치하고 의미를 부여했으니 작품이라고 우기는 전시였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8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9


안방에는 마을 사람들의 거실에서 떼어온 가족사진들을 걸어놓았다
. 가족사인 동시에 마을의 역사가 사진 속에서 빛이 났다. 작가의 메인 작품도 거기에 있었다.

숟가락이죠. 제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숟가락 한 벌씩을 달라고 했지요. 거기에 이름도 새겼어요. 작품 이름이 식구잖아요.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식구라고 하는 데 의미가 있죠.”

가족이라는 말에 밀려 퇴색한 식구라는 단어를 새삼 발견한 것 같았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들이 모여 살았던 집에 오래된 사진들이 있고 숟가락들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고도 남았다. 빈집과 사진과 숟가락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10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11


마당에는 시골식 드럼통 야외 난로가 있었고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 구워 먹을 군고구마도 있고 앉는 의자도 있었다.

이 정도면 전시장이 아니라 시골 외갓집에 온 건데요.”

제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어요. 이런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과 살아왔던 세대들이 방방을 다니면서 작품들을 보다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듣고 마당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모닥불도 쬐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하는 일상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잘 정비된 갤러리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사라지고 소외된 것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빈집이통째로전시장이된다는발상은누가했을까 12


디지털의 속도에 밀려 도망친 아날로그들을 붙잡기는 했으나 일부러 때 빼고 광을 내지는 않았다
. 손으로 다듬은 흔적과 자연스러운 손때까지 수용했다. 윤보연 작가가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 폐가를 작품 전시 공간으로 선정하고 설치했던 까닭이었다.

손으로 빚은 세상인 아날로그를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세대가 문화의 주류로 등장할 날들을 앞두고 있다. 감성은 많이 겉멋은 뺀 따뜻한 공간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온 기분이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마음은 따뜻하고 다정한 곳으로 향하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을까?


 

충화댁님의 다른 기사 보기

[충화댁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