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수서원이나 도산서원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충청남도의 시, 군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은 일곱 군데의 서원을 간직하고 있는 부여로의 서원 기행을 떠나보자.
▲<부산서원1> 위치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
▲<부산서원2>
▲<간곡서원> 위치 :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283번길 31-2
간곡서원은 병자호란 때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노곡 류동수를 제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간곡이란 이름은 이곳 마을 이름이 간은곡이란 명칭에서 연유되었고, 현재 이 서원에는 ‘간곡서원지’, ‘노곡가장’, ‘간곡서원사례’가 보관되어 있다.
▲ <칠산서원1> 위치 : 충남 부여군 임천면 부흥로171번길 73
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는 홍살문을 들어서면 의외로 아늑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칠산서원이 펼쳐져 있다. 매미소리, 풀벌레소리 새소리만이 답사객을 맞이해준다. 세속의 소리와 인공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고 귀가 먹먹해지면서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함만이 서원을 지배한다.
▲ <칠산서원2>
칠산서원은 시남 유계를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숙종 때(1687년)에 세운 서원이다. 유계는 조선중기의 문신인 김장생의 제자이며, 충청도 유림의 다섯 현인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 <칠산서원3>
서원의 구조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과 공부하는 공간인 강당, 서적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있다. 사당 안에는 유계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낸다.
▲ <퇴수서원> 위치 : 충남 부여군 임천면 충절로1001번길 28
이 지역의 문신인 조박과 조성복의 위패를 모시고 유생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세운 서원이다. 서원의 건물은 능선을 따라 남동향으로 배치되었고 사당과 솟을삼문 주위로 담장을 둘러 아담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매년 3월 초에 제사를 지낸다.
▲ <동곡서원1> 위치 : 충남 부여군 세도면 성흥로 479-9
동곡서원은 고려말 회양부사를 지낸 조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자연 지형을 따라 서원이 건축되었으며, 계단을 오르면 가장 높은 언덕에 사당인 상절사가 자리하고 그 정면에는 솟을삼문이 있으며, 사방을 담장으로 둘렀다.
▲ <동곡서원2>
사당으로 오르기 전에 사당의 입구 동쪽에 있는 흥학당이란 현판 옆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생들이 생활하던 화수루와 교육 공간인 흥학당이 마당을 중심으로 마주 보며 배치되어 있다.
▲ <창렬사1> 위치 : 충남 부여군 구룡면 금사남로 78
삼학사(三學士)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과 오달제, 홍익한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며 강학 기능을 지녔기 때문에 창렬서원(彰烈書院)이라고도 부른다. 삼학사(三學士)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다가 청군에 압송되어 갖은 설득과 회유, 심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기개를 지키다가 비참하게 처형된 충신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 바로 창렬사이다.
▲ <창렬사2>
굽이굽이 흐르는 구룡천을 건너 야트막한 산 아래 자리 잡은 크지 않은 창렬사. 삼학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곳이어서 그랬는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조선 전국의 서원 대부분이 훼철되었지만 이곳 창렬사만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건물이 웅장하지도 않고 보물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조용히 사색하면서 둘러보기 적합한 문화유산 가운데 한 곳이다.
▲ <창강서원1> 위치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삼충로서원북길 13-2
대부분의 서원이 그러하듯이 창강서원도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백마강을 곁에 두고 높지 않은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고 멋지다. 유생들이 공부하다가 가끔씩 눈길 한 번 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렸을 법한 풍경이다.
창강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추포 황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으며, 숙종 때(1682년) 임금으로부터 ‘창강’이란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 <창강서원2>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서원 입구의 홍살문을 들어서면 시선이 저절로 조금은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간다. 자연 지형을 따라 가장 높은 언덕에 사당을 세우고 그 정면에 가운데가 높고 양측으로 한 단 낮은 솟을삼문이 있으며 그 주위로는 담장을 둘렀다. 사당을 오르는 계단 양쪽으로 유생들이 생활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120여 년의 백제의 고도답게 부여 곳곳에는 화려하지도 또 규모가 크지도 않지만 의외로 많은 문화유산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부여 문화재들의 특징 중 하나가 단순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라면 현재 남아있는 부여의 서원에서 그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동선이 길지가 않아서 하루의 시간으로 부여 일곱 군데의 서원 모두를 호젓하게 답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