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과 한음 캐릭터 (포천 시청)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오성과 한음'의 설화에 담긴 기지와 해학으로 웃음과 지혜를 나누던 때가 있었다.▲ 한음 선생 영정
한음 이덕형(1561~1613)은 오성 이항복(1556~1618)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명신이었다.▲ 닫힌 마음
요즘 뉴스는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가 대부분이고, 부수적인 기사들 또한 어수선함으로 가득하다.그렇다고 가만히 방관만 할 수는 없으니, '오성과 한음'의 설화와 같이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이야기 속에서 이런 문제들을 속 시원히 풀어줄 혜안(慧眼)을 찾아보면 어떨까?
▲ 619번 지방도
당진 기지시리에서 송악읍으로 가는 619번 지방도를 지나다 보면 '한음 선생 영정'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한음 선생 영정 찾아가는 길
마을길로 들어선 후 긴가민가하게 약 3km 정도를 들어오자 저 멀리 사당으로 짐작되는 곳이 보인다.▲ 한음 선생 영당
사진에 보이는 영당과 우측에 관리동으로 보이는 두 동의 건물이 전부이다.▲ 한음 선생 영당
한음 선생은 본가와 묘소가 모두 경기도 광주에 있으며 오성과 한음의 설화로 유명한 곳은 경기도 포천인데, 왜 이곳 당진에 영당이 세워졌을까?▲ 한음 선생 영당
조선 후기에는 가문의 분화가 많았으며, 그 과정에 후손들이 문중의 유명한 인물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내세우고 싶은 마음에 기인하였다 하겠고, 이 또한 한음 선생의 후손 중 일부가 당진으로 오면서 영정을 필사해 왔고, 영정을 이곳 영당에 모셨을 것이다.
▲ 한음 선생 영당
한음 선생 영당을 마주 대하면 현판이 걸린 출입문과 그 옆으로 안내문, 그리고 광주 이씨 중 천석꾼을 이루었다는 이긍순 선생의 공적비가 나란하다.▲ 안내문
한음 선생 영정에 대한 안내문 옆으로 출입문은 굳게 닫혀있다.▲ 영당
들어갈 수 없으니 한음 선생 영정을 마주 대하지 못함이 못 내 아쉽다.▲ 한음 선생 영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8호 _ 안내문 사진)
비단에 그려진 이 영정은 크기가 90×155cm로 소수서원(영주), 근암서원(상주), 용주서원(포천)에도 봉안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어 이곳에만 남아 있다고 안내문은 전한다.▲ 한음 선생 영당
한국적인 기지와 해학은 무엇이며, 그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웃음과 지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