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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여의 조선시대 작은 교육기관 임천향교

2021.11.29(월) 19:25:45 | 태블리 (이메일주소:taihyeon0503@hanmail.net
               	taihyeon050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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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조선 후기 이행익이 중수한 향교입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전적은 판본 6종 7책, 사본 19종 46책이 있습니다. 이 중 임천군 향교 교생 유안, 임천군 향교 절목, 청금록 등은 이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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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 향교 외삼 문인 입구입니다. 임천 향교는 마을 주택이랑 거의 붙어 있어서 외로워 보이지 않네요. 조선시대 만들어질 때는 아마도 여기가 주택이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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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던 유생들이 생활하는 동재와 서재입니다. 건물 보관상태는 꽤 양호한 편으로 크기는 그리 크지 않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기숙사 같은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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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공부하던 강당인 명륜당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습니다. ‘명륜’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에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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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내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임천 향교 맨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대성전입니다. 조선시대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1849년(헌종 15)에 이행익이 명륜당과 동재와 서재를 중수하였습니다. 대성전에는 5성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 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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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내삼문에서 바라본 대성전과 마을 전경입니다. 마을과 가까워서 그런지 동네 지붕들이 코앞에 보입니다. 건물에 비해 마당은 넓은 편으로 답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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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임천 향교는 언제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원래는 구교리에 있던 것을 숙종 14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답니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쳐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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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앞은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또한 주차장이 두 군데라 동네 사람들도 주차장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네요. 저는 타지역에 가면 꼭 들러보는 곳이 향교나 서원입니다. 옛 조상들의 공부 방식을 배우기도 하며 더불어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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