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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시 국보 소개 (feat 국립공주박물관)

사상 최초 무령왕릉 출토 유물 5천여점 전체 공개

2021.10.16(토) 12:51:03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50년 전인 1971년 7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백제 무령왕릉 발굴,
지금까지 수많은 고분이 발굴되었지만, 주인을 알 수 있는 삼국시대의 왕릉은 없었습니다.
도굴이나 일제강점기의 무분별한 발굴, 훼손 등으로 인하여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무령왕릉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 무덤이 주인이 누군지 명확하게 밝히는 묘지석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사와 동아시아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 전경
▲ 국립공주박물관 전경

지금 국립공주박물관에는 당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이 최초로 5,232점 모두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국보로 지정된 그것만 해도 12종 19점이나 됩니다. 전무후무한 일이지요.

이 유물 모두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국보만 골라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시되는 유물이 너무 많아서 상설전시실에서는 왕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새롭게 전시하고 있으며, 기획전시실에서는 지금까지 진품을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무령왕릉 발굴의 연구와 성과, 과제 등을 종합 정리하였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상설전시실 입구
▲ 국립공주박물관 상설전시실 입구
 
상설전시실 앞에는 무령왕의 동상이 놓여 있고 무령왕에 대하여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 혹은 융이니,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요,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

무령왕은 백제 25대 왕으로 웅진시대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왕입니다. 굶주린 백성들을 지성으로 구호하고, 갱위강국을 선포하여 고구려에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무령왕릉 재연 모습
▲ 무령왕릉 재연 모습

상설전시실 안에 들어가 보면 무령왕릉을 원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연도 입구에는 지석(誌石) 2매와 오수전 한 꾸러미, 석수(石獸) 등이 있으며. 현실 동쪽에 왕의 목관, 서쪽에 왕비의 목관이 복원되어 놓여 있습니다.
발굴 당시에는 목관 대부분이 썩어서 나뒹굴고 내부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국보(國寶)는 ‘나라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문화재 가운데 특히 가치가 큰 문화재를 가리킵니다.
국보로 지정 최우선 조건은 그 시대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여러 유물 중에서 대표적인 것만 국보로 지정됩니다.
또한, 제작 기술이 우수하며 흔하지 않은 것이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름난 사람이 만들었거나 유서가 깊은 것, 역사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국보로 지정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이 국보로 많이 지정된 것은 제작이나 사용된 연대가 명확히 밝혀져서 역사적으로 의의가 크고 귀해서 당시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 하나하나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국보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국보 제154호 무령왕 금제 관식(관꾸미개)
▲ 국보 제154호 무령왕 금제 관식(관꾸미개)

삼국사기에 백제의 왕은 자줏빛 큰 소매가 달린 도포를 입고 금 꽃으로 꾸민 검은 비단 모자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무령왕 금제관식은 비단 모자를 장식한 것이지요.
무령왕 금제 관식은 왕의 머리 부분에서 2점이 발견되었는데, 얇은 금판을 오려 인동꽃 무늬를 맛새김하였는데, 역동적이고 강한 상승감을 줍니다.
6세기경 백제의 화려한 금공예술을 보여주는 왕의 유물로, 그 화려함은 가히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 관식
▲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 관식

왕비 관꾸미개는 2㎜ 두께의 얇은 순금판을 두드려 편 후 문양에 따라서 오려내는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꽂게 부분은 청동으로 만들어 붙였습니다.
중앙에 연꽃을 엎어놓은 모양의 대좌와 그 위에 활짝 핀 연꽃을 꽂은 꽃병이 있고, 주위에 불꽃처럼 펼쳐진 인동초무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왕의 것과는 달리 금달개, 영락 등의 장식은 따로 달지 않았습니다.

국보 제156호 무령왕 금귀걸이
▲ 국보 제156호 무령왕 금귀걸이

원통형 금봉으로 만든 세환 고리에 두 개의 연결 고리를 이용하여 두 갈래의 수식을 매달았습니다. 매우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의 귀걸이 중 최고의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됩니다.
그 공예기술의 정교함은 우리나라 귀걸이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하며 또한 금색과 곡옥의 색조가 이룬 아름다움은 백제인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국보 제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
▲ 국보 제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

발굴 당시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5쌍의 금귀걸이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1쌍은 무령왕 금귀걸이이고, 나머지 4쌍은 왕비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중 2쌍은 세공기술의 우아함과 작품의 예술성, 화려함이 뛰어나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습니다.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금목걸이 한 점은 14.0㎝, 또 한 점은 16.0㎝로 서로 길이가 다를 뿐 재질이나 제작기법은 완전히 같습니다. 각각 7개, 9개의 마디를 연결해 제작하였으며, 끝부분에는 목에 걸기 위해 두 개의 마디를 얇은 고리에 걸어놓았습니다.
무령왕비 금목걸이는 예술성 또한 최상위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보 제159호 무령왕 금제 뒤꽂이
▲ 국보 제159호 무령왕 금제 뒤꽂이

두드려 편 얇은 금판을 오려내어 만든 삼각부와 약간 두꺼운 세 개의 꼬챙이로 구성된 뒤꽂이로, 뒤에서 정으로 두드려 문양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타출기법으로 장식한 것입니다.
 
본래 뒤꽂이는 중국 문화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풍성하게 올린 다음 장식하는 전통 비녀이지만, 백제의 경우 머리에 꽂는 부분이 2가닥이 아닌 3가닥으로 되어 있어 동시대 중국의 예와는 다소 다르며, 여성이 아닌 남성 왕이 착용한 채로 발견되어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국보 제160호 무령왕비 은팔찌
▲ 국보 제160호 무령왕비 은팔찌

무령왕비 은팔찌는 무령왕릉을 발굴했을 때 목관 안에 안치된 무령왕비 시신의 왼팔 부근에 두 점 모두 있었다고 하며, 팔찌의 겉면에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는데, 팔찌의 두께가 고작 1cm 정도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용의 형상은 입체적입니다.
팔찌 내부의 살과 맞닿는 부분은 평평하게 해놨는데, 여기에는 해서체 한자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의미가 큽니다.

庚子年二月多利作 大夫人分 二百?主耳(경자년 이월 다리작 대부인분 이백삽주이)
(왕비가 죽기 6년 전인 경자년에 다리(多利)라는 장인이 왕비를 위해 은 230주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무령왕비 은팔찌는 명문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제작 연대와 제작자 그리고 무령왕비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왕족의 장신구였음이 확인되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보존 상태는 양호하고 출토지가 명확하며, 은팔찌 그 자체의 제작 수준과 미적인 감각도 뛰어나 백제의 금속 공예 수준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기에 유물로서의 가치도 대단히 높습니다.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무령왕릉을 발굴했을 때, 무령왕 시신의 발치 부근에 청동신수경이, 무령왕 시신의 머리 부근에는 의자손수대경이 놓여 있었다고 하며, 무령왕비 시신의 머리 부근에는 수대경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이제 상설전시관을 나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시 현장으로 들어가 봅니다.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시
▲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시

이곳 특별전시실에는 무령왕릉 입구에서 발견된 벽돌과 관을 만들 때 썼던 관 장식품과 못 하나하나까지 수습하여 모두 전시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무령왕릉 석수인 진묘수 진품과 왕과 왕비의 베게 와 발밭침 등 진품 등입니다.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
▲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

무령왕릉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발굴단원이 어두운 무덤 속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무령왕릉을 지킨 석수인 진묘수입니다.
이 진묘수는 머리에 뿔이 있고 몸에 날개가 있으며, 입과 몸통 일부에는 마귀를 쫓는다는 의미로 붉은색 광물인 진사를 칠하였습니다. 몸통은 각섬석암, 뿔은 철로 만들었습니다.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
▲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

묘지석에는 무령왕이 계묘년(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도 무령왕이 501년 즉위하여 523년 5월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만큼 삼국사기의 정확성을 이 묘지석이 밝혀준 것이지요.
이 묘지석들에 쓰인 몇 글자 몇 자가 백제사 연구를 무령왕릉 발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버린 것입니다.

<무령왕 묘지석>
寧東大將軍百濟斯 / 麻王 年六十二歲 癸 / 卯年五月丙戌朔七 / 日壬辰崩 到乙巳年八月 / 癸酉朔十二日甲申 安 / 登冠大墓 立志如左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나이가 62세 되는 계묘년 5월 임진일인 7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 8월 갑신일인 12일에 안장하여 대묘에 올려 모시며 기록한다.

<무령왕비 지석 앞면>
丙午年十二月 百濟國王大妃壽 / 終 居喪在酉地 己酉年二月癸 / 未朔十二日甲午 改葬 / 還大墓立 / 志如左

병오년 12월 백제국 왕대비가 천명대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정서방에서 삼년상을 마치고 기유년 2월 갑오일인 12일에 다시 대묘로 옮겨서 정식 장례를 지내며 기록한다.

<무령왕비 지석 뒷면 매지권>
錢一万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 寧東大將軍 / 百濟斯麻王 以前件錢 詢土王 / 土伯土父母上下衆官二千石 / 買申地爲墓 故立券爲明 / 不從律令
백제 사마왕(무령왕)이 돈 1만 매 이상을 지급하여 토지를 매입하여 능묘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왕도 토지를 매입하여 묘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국보 제164호 무령왕비 베개
▲ 국보 제164호 무령왕비 베개

이 베개는 나무토막에 U자형으로 홈을 깊게 파내서 여기에 머리를 두게 되어 있습니다. 베개는 붉은빛을 띠고 있으며, 그 표면의 테두리를 금박 띠로 두르고 내부 면에는 금박을 육각형으로 붙여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금박으로 만든 육각형 무늬 안에는 봉황으로 추정되는 새, 용, 비천상, 천인상, 연꽃으로 추정되는 꽃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령왕비 베개 윗면의 좌우로는 한 쌍으로 이루어진 봉황 머리 장식이 놓여 있다. 봉황 머리 장식도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으로는 검게 칠했고 붉은색과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국보 제165호 무령왕 발받침
▲ 국보 제165호 무령왕 발받침

시신의 발을 올려서 안치하는 용도로 쓰인 무령왕 발받침은 베개와 마찬가지로 나무토막을 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중심을 W자형으로 홈을 깊게 파냈습니다. 본 발받침은 표면에 검은 옻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흑갈색을 띠고 있으며, 표면을 거북이 등처럼 육각형 무늬를 이루도록 금판을 오려 만든 금띠로 장식했습니다.

무령왕릉은 초기에 무덤 내부가 공개되었지만, 훼손이 심해져서 따로 전시관을 만들고 유물들은 국립공주박물관 등에 일부 보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올 2021년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자 무령왕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무령왕릉에서 수습된 유물 5천여점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다시 한 자리에서 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지 모릅니다. 전시 기간 내에 오셔서 무령왕릉이 가진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찬란했던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동시 100명 입장 제한을 하고 있으니 필히 예약하시고 오셔야 당황하지 않고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https://gongju.museum.go.kr/gongju/html/sub1/0108.html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 전시>
2021.9.14.~ 2022. 3.6
국립공주박물관 상설전시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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