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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명장’된 섬마을아이… 거아도 출신 ‘김주호’씨 명장 반열 '우뚝'

중기계 정비분야 ‘인천시 미추홀 명장’서 ‘대한민국 명장’으로 우뚝… 어려운 형편 속 야간高 다니며 꿈 이뤄

2021.09.30(목) 13:16:22 | 주간태안신문 (이메일주소:east334@hanmail.net
               	east334@hanmail.net)

사진은 대한민국 명장 반열에 오른 남면 거아도 출신 김주호 명장.

▲ 사진은 대한민국 명장 반열에 오른 남면 거아도 출신 김주호 명장.


태안군 남면에서 학교까지 있을 정도로 유인도였던 거아도 출신 섬마을아이가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명장’ 반열에 올랐다.

주인공은 현대두산 인프라코어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주호 기술부장. 이에 김 부장이 소속된 회사에서는 지난달 23일 ‘대한민국 명장’ 선정을 축하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려 눈길을 끌었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린 숙련공들을 발굴해 기술인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기술인 우대 정착 및 활성을 위해 시행하는 제도다.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되면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명장 칭호와 함께 상당한 상금과 매년 연구비를 지원받게 된다. ‘대한민국 명장’은 명장 심사위원회에서 15년 이상의 특정 기술자를 대상으로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처 선발하되 명장으로 지녀야 할 최고로 숙련된 기술 이외에 도덕성과 인성 등을 고려해 종합토론을 거쳐 엄격하게 선정되기 때문에 거아도 출신 김 부장의 ‘명장’ 탄생은 남면을 넘어 고향 태안의 경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명장’ 김주호 씨는 1985년 1월 현대두산 인프라코어에 입사해 중기계정비와 시험 분야를 담당하면서 전문성을 쌓았다. 1999년에는 ’기계가공 기능장‘을 취득했고 2016년에는 ’건설기계장비 기능장‘에 올랐고 같은 해 중기계 정비분야에서 ‘인천시 미추홀 명장‘에 선정됐다. 이어 2018년에는 대한민국 산업 현장교수에 선정됐으며, 인하대 기계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며 명장으로서의 자격을 갖춰갔고 올해 마침내 ’대한민국 명장‘의 영예를 안게 됐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김 씨는 1963년 남면 거아도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부친(고 김기복)은 외지 어선의 선원으로 집을 자주 비웠으며, 어머니의 가출로 새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유년을 보내면서도 10세가 되기 전부터 가사를 돌봤다. 

전마선도 농경지 한 평도 없는 가정은 오직 아버지의 선원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여름과 겨울 어한기에만 잠시 집에 다녀갈 뿐이었다. 그래도 새어머니는 김 씨를 친 자식같이 돌봐주었다. 이에 김 씨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졸업 때까지는 언제나 이복동생 자매를 번갈아 업고 다니며 보살폈다. 

당시 남면초등학교 거아분교에서 김주호 명장을 가르쳤던 최재학 선생은 이렇게 회고한다.

“거아도라는 섬에서는 속대기(돌김)를 채취하는 봄철과 굴 채취 시기인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사리가 되면 아녀자들이 모두 바다로 나간다. 이에 김주호는 새엄마가 새벽에 바다로 나가면 아기를 업고 등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그 옆자리에는 아기를 앉히거나 교실 뒤편바닥에 혼자 놀게 했다. 그러다가 교실 마루에 실례해도 김주호는 짜증을 내거나 싫어한 내색 없이 뒤처리했다. 여자친구들 보기에 창피하게 느끼기도 했을 터인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인가. 김주호의 얼굴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그늘져 있었다. 하지만, 전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과묵한 성품이었다. 때문에 주민들은 어른 같은 아이라고, 친구들은 착하고 심성 굳은 김주호에게 친절했다. 중학교 입학을 할 형편이 안되었으나 새어머니의 적극적인 권유로 육지의 서남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렇게 3학년 1학기까지 버텼으나 더 이상 은 무리였다. 고심하던 아버지는 인천에 셋방을 얻어 가족을 합치고 김주호를 전학시켰다. 그러나 고등학교진학은 언감생심이다. 김주호는 공장에 취업하여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그때부터 오로지 자력으로 버텨 나갔다.” 

이렇듯 김 씨는 성실하게 근무한 덕에 1985년 대기업의 정식 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산업체 야간 대학에 진학해 못다 이룬 향학의 꿈도 펼쳤다. 낮에는 고된 공장근로자로 밤이면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밤잠을 설치며 학업을 계속하면서도 중기계정비와 시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그 결과 ‘국가기술자격 기계 가공 기능장’과 ‘건설기계 정비 기능장’, 건설기계 관련 특허 단독 2건, 공동 5건을 보유하게 됐다. 2017년 8월에는 인천 미추홀 명장 1호로 선정됐으며, 올 9월 8일 마침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돼 ‘명장’ 칭호를 받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현대두산 인프라코어 기술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국가기술자격 검정 심사위원. 사이버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거아분교 당시 김주호 명장을 가르쳤다는 최재학 소설가는 “그가 오늘이 있기까지는 오직 성실과 근면으로 한 우물만 판 결과”라고 추켜세웠다.  

김주호 명장은 “제 손을 거쳐 간 제품이 고객 마음에 들 수 있도록 스스로 기술 연마를 지속해 온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후배들에게 기술 노하우를 제공,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기술력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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