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조화가 맞지 않는 모양새 같으면서도 당당하고 경쾌한 탑신이 독특하다. 너무 잘생긴 배우들 속에서 톡톡 튀는 조연같은 탑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6>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장하리 3층 석탑의 매력을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재탕이 아닌 경쾌한 변주이며 일종의 패러디이며 백제의 여운이라고 했다.
그냥 돌탑이라고 여겼던 탑이 전문가의 견해가 담기면 문화재로 보인다. 백제의 향기가 지배적인 부여에서 가끔씩 정형에서 벗어나 파격을 보여주는 문화재들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새로운 맛집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기분이 든다.
백마강 줄기를 따라서 발달한 부여의 마을들은 비옥하고 넓은 강변의 토지에서 넉넉하게 생산되는 곡식들과 수상 교통의 요지라는 지리적인 장점을 바탕으로 문화가 싹텄다.
부여 장암면도 백제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학문의 발달을 이끌었던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정착한 풍양 조씨와, 진주 강씨, 목천 상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온 곳이다.
부여 장암면 장하리에는 흥학당 이라는 조선 시대 건물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토호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가문 차원에서 건물을 짓고 인재를 양성했다. 이곳은 부여 풍양 조씨 가문의 자손들을 교육시켰던 사교육 기관인 셈이다. 가문 차원의 사교육 기관인 흥학당은 충북 영동과 전북 장수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논산에는 파평 윤씨 가문에서 설립한 종학당이 유명하다. 종학당에서 수학한 파평 윤씨 가문의 인재들은 42명이 문과에 급제를 하는 성과를 올렸다
흥학당 앞을 장식하고 있는 비석들은 거의 최근 세워진 것으로 풍양 조씨들의 공적비가 대부분이다. 장암면은 오늘날에도 풍양 조씨와 진주 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씨족 사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흥학당의 뒷편.
조선 후기의 학문적 기반은 전국의 가문에서 양성한 인재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같은 성씨와 본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문을 찾는 전통은 전국의 흥학당 같은 사교육 기관에서 유래한 것 같다. '가문의 영광' 이라는 말이 무심하게 들리지 않는 곳이 바로 흥학당이다.
장하리 삼층석탑 -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