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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성면 성북2리 몽산성 북쪽에 있어 ‘잣디’라 불린 마을

“지금은 벚꽃명소지만 원래는 버드나무가 많았지” 원님이 도망간 ‘원도망골’…볼일 보던 솔밭은 ‘똥솔밭’

2021.05.21(금) 09:00:02 | 관리자 (이메일주소:yena0808@hanmail.net
               	yena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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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본 순성면 성북2리 전경

<편집자주>
오랜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있는 보호수와 누구도 찾지 않는 열녀문, 그리고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들이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본지에서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취재를 통해 기사와 영상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영상은 유튜브 ‘당진방송’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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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한만섭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 장례를 치르던 모습. 당시에는 장례식장이 없어 집에서 상주가 삼베옷을 입고 미루나무로 만든 지방이를 짚은 채 손님이 올때마다 곡소리를 냈다.

아늑한 농촌마을인 순성면 성북2리에는 당진의 명소로 자리 잡은 아미미술관이 위치해 있어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4월이면 천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색 벚꽃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도 한다. 당진지역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다.

성북2리에서 나고 자란 주민 한만섭(85) 씨는 “성북2리는 벚꽃이 참 예쁜 마을”이라며 “구절산까지 벚나무가 심겨 있어 이곳처럼 봄날을 느끼기 좋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벚나무가 식재되기 전까지는 버드나무가 많았다”며 “지금은 폐교된 유동초등학교도 한자 ‘버들 유(柳)’자를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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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성면 성북2리에 위치한 아미미술관. 아미미술관은 원래 유동초등학교였으나 1993년 폐교된 이후 박기호·구현숙 작가에 의해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성 뒤에 위치한 마을 ‘잣뒤’

성북2리는 불리는 이름이 많은 마을이다. 면천면이 군이었을 시절에는 ‘잣뒤’, ‘잣디’ 등으로 불렸다. 순우리말로 ‘잣’은 ‘성(成, 몽산성을 의미)’을, ‘뒤’는 북쪽을 뜻한다. 뒤가 북쪽인 이유는 옛날에는 관아가 항상 남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잣뒤를 성의 북쪽이라고 해 ‘성북’이라고 붙여졌다.

한만섭 씨는 “성북리는 1리와 2리로 나뉘는데, 성북1리는 위에 있어 ‘윗잣디’, 성북2리는 아래에 있어 ‘아랫잣디’라고 불렀다”며 “성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상성북, 하성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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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성면 성북2리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건강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

성북2리는 4개의 자연마을로 나뉘어 있다. 1반은 함박골, 2반은 원도망골, 3반은 도당골, 4반은 안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함박골은 함박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원도망골은 면천의 원님이 이씨와 김씨의 싸움을 보다 도망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3반은 도당(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집)이 위치해 있어 지어진 이름으로, 빈대가 많아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고 한다. 4반은 마을 안쪽에서 있어서 안골이라고 부른다. 

 

면천 가는 길목에 있던 ‘똥솔밭’

과거 성북2리에는 솥을 만드는 솥점과 술을 제조하는 양조장, 그릇을 만드는 공장,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또한 똥솔밭이라는 곳도 있었단다. 면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던 이곳은 휴게소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소나무가 많은 300평 규모의 땅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볼일을 보곤 해서 똥솔밭이라고 불렸다고.

서당도 자리해 있었다. 성북2리에는 안병로 서당과 이갑세 서당 두 곳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성면지에 따르면 1940년경 성북감리교회 너머에 안병로 선생이 자신의 집 사랑방에 서당을 개설해 성북2리와 인근 마을 아이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쳤다.

또한 홍성에서 살다 성북2리로 이사온 이갑세 선생이 1955년 사랑채에 서당을 설치하고 10세에서 20세 사이에 있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갑세 선생이 홍성에서 이사왔다고 해서 홍성집이라고도 불렸는데, 서당이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에 따라 이갑세 서당도 문을 닫게 됐다.

“등교하면서 절반이나 먹은 도시락” 

이제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추억의 한 조각으로 자리하고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성북2리에서 남산공원(설성고등학교)까지 1시간 20분 거리를 매일 걸어서 등·하교했다는 김칠성 이장은 “집에서 고등학교까지 8km나 떨어져 있었다”며 “학교가 멀어 등교길에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반이나 먹어치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교할 때는 찔레나 아카시아 순과 꽃을 따먹으면서 걸어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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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성북2리 주민 한만섭 씨, 이창범 씨, 김칠성 이장

“성북2리로 오세요!”

한편 성북2리에는 현재 2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김칠성 이장은 “1970~1980년대에는 마을주민들이 참 많았다”며 “하지만 핵가족화되면서 지금은 한 가구당 1~3명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을은 당진 시내와 가깝고 환경을 저해하는 공장이나 송전철탑도 없어 귀농이나 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주민 이창범 씨 또한 “우리 마을은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곳”이라며 “성북2리 주민들은 마을로 이사 오는 사람들을 모두 환영한다”고 말했다.

“성북2리가 점점 살기 좋아지는 마을이 되고 있어 기쁩니다. 이장으로서 주민들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북2리로 많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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