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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부성군(현서산)의 태수였던 최치원이 머물렀던 도시

2021.05.12(수) 11:54:44 | 지민이의 식객 (이메일주소:chdspeed@daum.net
               	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독한 길을 걸었다는 최치원은 경주 최 씨의 시조이며 수많은 지역에서 그를 기리는 공간이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말 진골귀족 세력 중심의 신분 체계의 벽과 신라 왕실에 대한 실망감과 몰락을 느끼며 모든 벼슬에서 내려와 유랑하면서 살았다. 그의 호인 고독한 구름. 고운(孤雲)은 최치원은 왜 자신 스스로를 고독한 구름이라 명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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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산이며 옛 지명으로 부성군이라고 불렸던 곳에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을 했던 기록도 있다. 서산시청이 자리한 곳에는 옛날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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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와서 묵던 서산 객사도 그런 곳 중에 하나다. 모든 것을 깨닫고 유불선(儒佛仙) 모두에 통달했던 그의 식견으로 신라의 국운이 다했음을 몰랐을 리 없지 않았을까. 결국에는 나라가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가 나라를 버렸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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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사람을 살았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기가 힘들겠지만 잠시 비를 피해 서산객사에 머물러 본다. 방이라도 내준다면 잠시 하루를 묵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는 왜 고독한 구름같이 전국을 헤매고 다녔을까. 무엇이 그를 전국의 곳곳으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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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도 적지 않은 벼슬 생활을 했었다.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을 것이다. 온갖 학문을 공부했던 그는 전국의 바위에다가 글도 참 많이 남겼다.  893년(진성여왕 7)에 최치원 선생이 부성군(현 서산) 태수로 역임하면서 공부하였다던 구전도 전해지고 있는 서광사가 있는 곳도 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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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어느 곳을 유람했을지는 몰라도 그가 생각했던 세상은 달랐을 것이다. 신라 골품제에 한계를 느낀 최치원은 고려에 우호적이었다. 해인사에 머물며 고려 왕건에게 보낸 서한에 '경주 계림은 누런 잎이요, 개성 송악은 푸른 소나무다(鷄林黃葉 鵠嶺靑松)'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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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서산시청의 이 공원처럼 항상 푸르는 모습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최치원의 영정은 19곳에 봉안돼 있는데 크게 문인풍과 신선풍 영정으로 그려지고 있다. 관모과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단아한 모습으로 심의(深衣·높은 선비의 웃옷)에 복건을 쓴 유학자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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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최치원이 등장한다. 서산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다가 고려 충렬왕이 복군을 단핼항 당시 상서롭다는 의미를 넣어서 서산군이라고 명명하였다. 지금 서산을 자리 잡게 한 정인경의 공을 기려 서산에서는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해미읍성 역사축제가 올해로 600년의 역사를 기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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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훌륭한 사상가이었음은 그가 유교나 불교 그리고 도교에 통달했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신라에 돌아와서는 왕족과 호족이 발호하여 백성을 착취하며 기근 속에서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신라 말기의 조정을 향하여 일대 개혁을 촉구하였던 그가 서산에 있었을 때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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