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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충남504호

행정선 운전원 79세 임하규

2020.12.08(화) 10:07:05 | 관리자 (이메일주소:srgreen19@yesm.kr
               	srgreen19@yes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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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바다처럼 넓은 예당저수지엔 파도가 인다. 고향집과 너른 옥토가 잠든 자리다. 60여년 전 완공된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대흥지역(충남 예산군)은 면소재지 3개 마을과 9개 마을로 갈라졌지만, 사람들은 물 위를 오가며 삶을 이어나갔다.


이들의 발이 돼준 건 행정선 ‘충남 504호’. 1970년부터 88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까지 운전원으로 일한 임하규(79, 동서리) 어르신은 5톤짜리 배로 매일같이 물살을 헤치며 온갖 사연을 실어날랐다.


하루 4번 운행했지만 막배를 놓쳐 발을 동동거리는 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매번 학교 뒷산으로 소풍가던 옛 대송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봉수산 대련사 구경을 시켜준다며 자청해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지금은 도로가 많이 뚫렸지만 그때는 차가 없고 찻길도 없었으니께, 학생들이 전부 걸어다녔어. 대흥중·고등학교 학생들이지. 월송에 일찌감치 가서 한 배 실어다놓고, 50~70명 되는데 한 번에 다 탔어. 그러고 대야리 갔다 후사리로 가. 후사리는 잘못하면 조금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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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예산군 옛사진공모전’에 노명자씨가 출품한 사진. 임하규 옹이 운전하던 도선이다. 1978년 촬영했다. ⓒ 예산문화원


지난 11월 26일 만난 그가 수십 년전 기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회상했다. 학교가 막배시간(오후 6시)을 넘겨 끝나는 날엔 기다렸다 태워갔고, 거리에 따라 10~15원씩 받던 요금도 학생들에겐 받지 않았다.


임 어르신이 처음 몰았던 배는 주문진 기술자들이 와서 만들었다는 5톤짜리 목선이다. 시동을 걸기 까다로워 초대운전원 박승세씨가 그만둔 뒤로 후임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단다.


배가 어찌나 무거운지, 옆에 참죽나무로다가니 간살을 댔어. 이렇게 두꺼운 놈으로. 그 나무는 잘 썩들 않어. 엔진은 10마력짜리 아까다마식인데 이게 압축이 보통 센 게 아니야. 누가 와서 시동 걸을라고 해도 못 걸어서 그냥 세워놨어. 내가 군대에서 기계 고치는 기술을 많이 습득해서 보니께 돌아가게 생겼대. 이걸 팍 돌려서 따다다닥 소리가 나니까 그때 면장했던 강보희씨가 내일부터 나와달라고, 그래서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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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2월 14일, 철선으로 새로 만든 행정선 진수식이 열렸다. ⓒ 대흥향토지편찬위원회


배가 낡자 1977년 당진 ‘연암조선소’에 335만원을 주고 철선으로 교체했는데, 예산이 부족해 배 전용엔진 대신 양수기 엔진을 썼더니 고장이 잦고 추진력이 약했다.


“바람 심할 적에는 저건너로 가서 집에 못 올 때가 많았어. 돌풍이다 하면 못 와. 배가 추진력이 없으니께 자꾸 바람한테 떠내려가. 스크루(회전장치)가 밀어야하는데 바람을 못 이기는 거야. 아는 사람 집에서 자고, 학교 숙직실에서도 많이 자고다녔어”


“동네마다 다니는 엿장사가 있었어. 엿 팔고 오는데 바람이 심히 불었어. 배를 대야할텐디, 저 방죽 밑이 떠밀려가다 논둑에 걸려서 탁 섰는디 허벅지까지 물이… 그 양반이 엿지게 짊어지고서 오는데 둑이 물속에 안 보이니께 걸려서 넘어져버렸네. 그땐 고무신짝, 나물같은 거 떼주고 양재기 빵구난 거, 솥단지 깨진 거, 삼베 옷 입다 떨어진 거 엿장사가 다 받아갔다고. 아 그런디 막 파도가 쳐버리니께 그게 어디가있어. 컴컴해서 찾을 수가 있어 어뜩혀. 그 이튿날 새벽에 가보니께 한쪽에 있더라고. 줏어놓고 가져가라고 했지”


겨울이 되면 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두껍게 얼음이 얼었다. 물에 띄워놓은 배가 부서지지 않도록 매일 배 언저리 얼음을 깼는데 보통 일이 아니었단다. 봄이 가까워질 즈음, 임 어르신은 손님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아지랑이 버석버석 피어오를 적에 추우니께 불 피워놓고 싹 정비를 했어. 댓거리라는 게 있어. 삼처럼 쭉쭉 찢어 꽈서 배 빵구난 데, 빈틈에 쭉 끼워야혀. 배 도색할 거 하고, 준비해가지고 얼음 풀리면 운행 시작해. 4월달 되면 농사짓기 때문에 저수지물을 많이 빼야혀. 못자리해놓고 모심기할 적엔 잔뜩 내려가. 배를 (물가에) 매놨잖어? 그럼 땅에 가서 있어. 그걸 빨리 안 내려놓으면 밀어넣기가 정말 어려워. 밤에 자다말고 두 번씩 나가서 밀어넣어야혀. 여름엔 물 빠지면 (배를 대놓은 곳까지) 30분은 더 걸어가야 혔어”


배에 사람만 태운 것은 아니다. 우시장에서 사온 송아지, 가을철 수확한 벼도 올랐다.


“송아지는 마리당 15원씩 받았어. 벼바심할 적엔 볏가마 실어날랐지. 여기 농협(예산농협 대흥지점)에서 매상을 했거든. 가을에 2~3번 정도 (수매를) 했어. 40키로짜리 100개씩 실었어. 그러다 대률농협이 생겨서 글로 벼를 받았지”


운전대를 잡은 18년 동안 한 번도 사고난 적 없지만, 밤에 학생들을 태워 갈 때 바람이 불면 배가 뒤집어질까봐 늘 마음을 졸였다는 임 어르신. 간혹 저수지에 던져놓은 고기그물이 물 속에서 돌아가는 스크루에 걸리면, 승객들을 뱃머리 쪽으로 보내 배를 기울인 뒤 칼로 일일이 잘라냈다고 한다.


물에 빠진 낚시객 등을 건져내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숨이 끊어져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상황을 묘사하던 임 어르신은 “그게 제일 어려웠지…”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도로포장율이 높아지고 자가용이 늘자 행정선 운행은 자연스레 중단했고, 임 어르신은 불법어로 단속과 청소차량 운전 등을 하다 1998년 퇴직했다.


철선에 직접 ‘대흥’이란 이름을 써넣었다는 그는 종종 붓에 먹을 묻혀 글을 적는다.


“나 어린시절 보리가 추위를 견디고 보리이삭이 패여 노란빛이 나면 이삭을 잘라 큰솥에 쪄서 보리고개를 넘고 고된 세월도 다 보내고…”

정갈히 적힌 글씨를 읽어내려가는 목소리가 단단하고 힘 있다. 예당에 깃든 그의 일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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