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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윤봉길과 스승 성주록 그리고 오치서숙

생생현장리포트-김두레무한정보 기자

2020.11.17(화) 12:27:0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윤봉길과스승성주록그리고오치서숙 1


1919년 3.1운동에 자극을 받아 12세의 나이로 일제식민지교육을 거부한 매헌 윤봉길 의사. 그가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향한곳은 ‘오치서숙(烏峙書塾)’이다.

윤봉길은 이곳에서 1921년부터 1925년까지 조선의 학자 성삼문 후손인 유학자 고(故) 매곡(梅谷) 성주록선생 문하생으로 사서삼경, 한시, 한학을 공부했다.

1926년 서숙생활을 마치고 스승에게 ‘매헌’이라는 아호를 받은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촌계몽과 부흥운동을 시작했다.

윤의사는 자신이 사는 농촌 마을에서이웃들의 무지를 깨우치고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야학을 설립했다.

1927년 야학교재 농민독본을 저술, 토론회나 강연회, 학예회 등을 열었고,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한 단체 ‘월진회’를 조직해 다양한계몽운동을 실행했다. 1930년 ‘장부출가생불환’이라는 신념이 가득 찬 편지를 남긴채 큰 뜻을 품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향했다.

최근 예산군 윤봉길의사기념관 현지 조사와 증언을 통해 오치서숙 터를 고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으로 윤 의사에게 독립운동사상을 심어준 오치서숙과 스승 성주록 선생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오치서숙은 ‘까마귀 고개에 공부하는 숙소’라는뜻으로 덕산 ‘가마고개’ 지명에서 유래했다. 후학 70여명을 양성했던 그곳은 아쉽게도 현재 터만 남았다.

그동안 덕산 ‘둔1리 둔지미 1길’에 있었다고 알려져 왔지만, 2달여 전 성주록 선생 제자 맹화섭(90) 선생과 성주록 선생 손자 성낙호씨 증언, 위성사진 자료와현지조사를 통해 원래 위치가 ‘둔2리노곡길 16’인 것으로 확인했다.

맹화섭 선생은 생존하는 성주록 선생 마지막 제자로 17세 때부터 오치서숙에서 수학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오치서숙 본래 자리는 가마고개인근 맹교원 선생이 거주하던 집이다.

성주록 선생은 이곳에서 통해 윤 의사와관련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자주 전했다. 그는 순수 학문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문제를고민했으며, 홍주의병장김복한의 사상을 높이 숭상해 윤 의사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영향을 줬다.

예산군은 오치서숙과 성주록 선생의 의미를 재조명할 계획이다. 오치서숙을통해 임시정부 등독립운동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 중국으로 향하는 계기 등을 염두해 오치서숙이 윤봉길 의사에게 어떤 영향을줬는지. 이곳에서 누구와 교류했는지를 연구로풀어낸다는 설명이다. 역사의 현장, 더 나아가 새로운 교육의 현장이 될 오치서숙의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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