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민리포터 논두렁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지가 두 달이 넘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완화가 되어 휴양림과 가게 문이 조금씩 열고 있는 시점에 추사고택과 백송공원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청명한 날씨와 봄의 얗기가 물씬 풍기는 벚꽃과 수선화, 그리고 목련이 그 옛날의 별땅 정원으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추사고택에서 화순옹주와 김한신, 그리고 김흥경·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삶이 그대로 묻어 있는 집이기에 특별한 것 같습니다.
다들 추사고택만 들르고 가시는 경향이 있는데요, 조금만 시간 내서 걸어 보아요. 그러면 백송과 함께 월성위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합장묘가 있습니다. 곳곳에 추사체 조형물들이 있어서인지 걸어가는 내내 심심하지가 않았습니다. 참, 백송이 옹방강과의 인연 그리고 청나라 사신들과의 인맥으로 몰래 들여오게 되었는데요, 국내에 7곳에 심어져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200평 남짓 화순옹주홍문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은 화순옹주와 혼인하고 월성위로 봉인해집니다. 부부간의 금슬은 좋았으나 남편 김한신이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3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단식으로 14일만에 세상을 뜨게 됩니다. 남편에 대한 정절은 있으나 효는 모자람이 있다 하여 영조는 열녀문을 세우는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훗날 화순옹주의 조카인 정조가 고모의 정절을 기며 월성위 부부 무덤이 있는곳에 열려문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에 수명이 얼마나 짧았는질지를 짐작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파싸움으로 인해 왕의 인척들이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에 한시름 놓기 편한 곳이 바로 예산 백송공원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