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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코로나19를 피한 호젓한 산책 '덕산향교'

내삼문 오르는 계단 600년 풍상 고스란히

2020.03.05(목) 10:01:28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예산 덕산향교 내삼문.
▲충남 예산 덕산향교 내삼문, 600년의 풍상을 견뎌낸 계단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사람이 많이 붐비는 장소를 피하면서 호젓한 산책을 즐기려 충남 예산군 덕산향교(충남 문화재자료171호)로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향교는 조선의 공립교육기관이자 선현의 제사를 모시던 곳입니다. 성균관보다 낮은 단계의 교육 기관이지만, 유교 이념을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기에 국가에서 부·목·군·현에 각 하나씩 설치하고 규모에 따라 학생 정원을 30~9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곳의 우수학생은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보장됩니다.
 
이번에 찾아간 덕산향교는 조선 초기 가야산 자락에 세워진 이래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어 고풍스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내삼문을 오르는 계단은 600여 년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덕산향교. 외삼문이 없어 명륜당으로 바로 연결된다.
▲덕산향교, 외삼문이 없어 명륜당으로 바로 연결된다

덕산향교는 외삼문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을 앞에 두고 뒤에 선현을 모시는 대성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덕산향교 명륜당.
▲덕산향교 명륜당
 
덕산행교 명륜당.
▲덕산향교 명륜당2
 
향교는 강학과 배향의 공간이 핵심입니다. 대지가 평지이면 전면에 배향을, 후면 강학공간을 두는 전묘후학(前廟後學)으로 배치됩니다. 하지만 덕산향교처럼 경사진 대지에서는 전면의 낮은 곳에 강학을, 후면 높은 곳에 배향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가 전형입니다.
 
덕산향교 계단의 석양.
▲덕산향교 명륜당 계단의 석양
 
덕산향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불에 탔다가 인조 때 중건했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지금도 해마다 춘추석전이 봉행되고 있습니다.
 
덕산향교 입구에는 ‘하마비(下馬碑)’와 ‘홍살문’으로 향교의 경계를 표시합니다. 지위에 관계없이 마차에서 내려야 하고 홍살문을 지나는 순간 의관과 마음가짐을 다잡도록 하고 있습니다.
 
덕산향교
▲덕산향교 전경, 오른쪽 홍살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가장 왼쪽 비가 하마비
 
덕산향교 홍살문.
▲덕산향교 홍살문 
 
건물의 배치는 외삼문(外三門)이 없이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등장합니다. 명륜당 동쪽의 중문을 통해 향교로 들어서면 정원이 있고, 동서방향으로 각각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었습니다. 북쪽에는 긴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을 거쳐 대성전이 나오는데 이곳에만 담을 둘렀다고 합니다.
 
덕산향교 동재.
▲덕산향교 동제

덕산향교 서재.
▲덕산향교 서제
 
덕산향교 대성전 1
▲덕산향교 대성전1 

덕산형교 대성전 2.
▲덕산향교 대성전2

덕산향교 대성전3.
▲덕산향교 대성전의 단청

덕산향교 대성전의 담장.
▲덕산향교 대성전의 담장

코로나19가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만듭니다. 햇살 좋은 주말을 맞아도 외출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교류조차 불편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것을 선택해 나만의 사색의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요?

저는 덕산향교를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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