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초등학교 운동장 가득 메운 동심
공주시 정안면 석송초등학교에서
2019.11.02(토) 22:52:00 | 황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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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ikesa@hanmail.net)
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 학교가 세워질 때 어디에서 옮겨왔을지 모르지만 나무들은 나무만 아는 나이를 먹고 어느덧 학교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공주시 정안면 석송초등학교를 들어서는 길 오른쪽으로 반듯하게 머리를 자른 회양목은 석송초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기념으로 심었다는 글이 교문 오른편에 낮게 세워졌다.
한적한 시골 초등학교. 이곳에 모여 도란도란 어울렸을 우리네 친구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다가온다. 도시와 시골의 구분 없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서면 운동장에 모여 도란도란 어울리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이면 부르던 그 노래 따라 우리는 자라고 자랐다. 친구들은 지금 이곳에 없지만 상상의 나래는 그 옛날 추억의 운동장을 달린다. 우리의 몸과 생각이 커감에 따라 운동장은 작아지고 학교건물도 작아졌다. 그토록 넓었던 운동장이 저리도 작았는지. 높은 교단은 언제부터 저렇게 소박하게 서 있었는지.
우리가 자라는 동안 나무들도 자라고 또 자라 허리 둘레가 커져 갔다. 회양목이며 피고 지는 화단의 작은 꽃들, 개나리와 코스모스는 해마다 피고 졌을 터였다. 학교 근처 차가 다니는 길에는 어른스럽게 자란 은행나무들이 무수한 은행을 쏟아내고 있다. 한 가지에 오글오글 모인 은행알 같던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지금은 성글게 모인 전교생들이 성근 추억을 만들어 간다.
이 학교의 오랜 역사를 지켜보았을 은행나무는 아이들은 줄어드는 그 안타까움들 대신에 저리도 많은 은행들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소복하게 쌓인 은행알들이 또 이 학교를 위해 무성하게 자라고 자라나면, 다시금 아이들이 왁자하게 모여들까.
▲오케스트라로 꿈을 연주하는 석송초등학교
학교 뒤쪽 머지않은 곳에는 고속도로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한때는 고요했을 이 학교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차량들의 소음이 밀려든다. 창문을 닫으면 그 소리가 잦아들까.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고속도로의 설치는 마치 이 학교의 존재를 어지럽히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운동장에서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엄마의 귀가를 기다리는 세 명의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소음과 인근 축사에서 나는 냄새가 나의 오감을 불편하게 했지만 저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동심에 나는 아주 잠시 여행자의 기쁨을 누렸다.
▲1986년에 놓인 석송교
<사랑 퐁퐁 기쁨 솔솔>이라는 초등학교 옆에 붙은 행복한 유치원의 구호가 허허로웠는데, 저 아이들은 내게 ‘기쁨 솔솔’의 계기가 되고, 도시가 주는 냉랭한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