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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산군 대술면 아계 이산해 묘소를 찾아보다

2019.08.26(월) 11:36:05 | 눈곶 (이메일주소:borisim3@naver.com
               	borisim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요즘 풍수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남연군묘만큼 풍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답사지로 유명한 곳이 예산군 대술면에 있는 아계 이산해 묘소여서 찾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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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의 성인 '초성(草聖)'이라 불리는 아계의 초서 작품

선조 때 8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에게 성암(省庵) 이지번(李之蕃)은 그의 아버지이며, 토정(土亭) 이지함은 숙부가 된다. 5세 때 숙부인 토정 선생에게 수학했고, 6세 때 명필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퍼져서 글씨를 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퇴계 선생까지도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 도가봉래산(道家蓬萊山)'이란 연자를 받아 갔다.

문장과 수묵화에도 뛰어나 저술로는 수작촌기(酬酌村記), 운주사기(雲住寺記), 이수정기(二水亭記) 등을 비롯해서 많은 시문이 아계집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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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저수지

아계 이산해 묘소가 자리잡고 있는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양지말은 예산군과 아산시의 경계 지역으로서 예산 읍내에서도 산길과 들판길을 타고 자동차로 약 30분 이상을 가야 한다. 방산저수지 윗부분에서 유입되는 하천의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150m 진행하면 우측으로 들어가는 작은 마을의 중앙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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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자 조정에서 예장(禮葬)을 위해 파견한 관리가 한음 이덕형이다. 한음은 아계의 사위가 된다. 숙부인 토정이 이덕형의 관상을 보고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알고 조카인 아계의 딸을 혼인시키도록 한 것이다.

한음은 38세에 좌의정에 올라 죽기 1년 전인 52세까지 영의정과 좌의정을 번갈아 지냈다. 그도 당시 명 지관으로 활약하였던 스님 성지(性智, 광해군 때에 궁궐의 터를 잡는데 관여해 신임을 얻다가 광해군의 실각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와 빈번하게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면 풍수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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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그령들도 묘소 앞에서 읍하는 모양새로 서 있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용이 죽어서도 살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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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상석 옆에는 본래 거북이를 조각한 돌이 있었는데, 도난당해서 현재는 없다. 묘소 앞 주변에 둥근 테 모양으로 돋은 부분이 있는데 이를 전순(氈脣)이라 한다. 이는 연못에서 판 흙을 지와바지(손과 손으로 옮기는 방법)로 스님들이 옮긴 것이라 한다. 하여간 아계 선생의 묘소는 비보(裨補) 풍수의 전형적인 예로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묘소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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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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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 보는 경치는 장관이었고 올려다 본 하늘도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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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과 삼신도

여하튼 풍수에 능한 토정 가문과 한음의 작품이라 볼 수 있는 이 묘소는 지형이 오리 형국과 닮아서 산소를 들일 때 연못을 파야 좋다고 해서 연못을 팠다 한다. 이렇게 조성(造成)된 못에 이산해 선생이 생전에 연(蓮)을 좋아하여 연꽃이 만개했다는 말을 들으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말을 타고가 구경하였기에 아계공의 아들 석루공(石樓公, 이경전)과 사위 한음공(漢陰公, 이덕형)이 이산해 선생이 생전에 좋아하던 연(蓮)을 심었고, 연당(蓮塘)내에 三神島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각각 나무를 심었다는데 그 나무가 4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노목(老木)이 되어 연당(蓮塘)을 수호(守護)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신도는 곧 도가의 신선사상에서 나오는 삼신산을 의미한 것이다.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를 가리킨 삼산으로 신선이 거처한다는 전설상의 곳이다. 아마도 선생이 죽은 후에도 선계(仙界)에서 노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삼신도를 조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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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계 이산해 선생(1539~1609)의 신도비

삼신도 바로 앞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1810년경 번암 채제공 선생이 찬하고, 전액은 미수 허목의 글씨를 집자 하였으며 비문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한산 이씨 아계공파에서 관리 보전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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