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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곳, 서산 해미순교성지

2019.08.06(화) 20:24:20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해미순교성지
▲해미순교성지
 
굳이 신자가 아니라도 순교성지에서는 숙연해진다. 서산시 해미면 ‘해미순교성지’를 찾던 8월 3일(토)은 성지 주변이 고요했다. 무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나는 계절, 나는 해미순교성지에서 죽음도 불사한 순교자들의 강한 신념 앞에서 문득 서늘해졌다. ‘해미는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 유일하게 진영(鎭營)이 있던 군사요충지였다’. 역사적으로 1790년대부터 백여 년 동안 천주교신자 수천여 명을 국사범으로 처형한 해미진영. 그렇게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으나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여, 아직도 수많은 순교자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해미순교성지
▲해미순교성지

해미순교성지로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설치물
▲해미순교성지로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설치물

정원 한 켠으로 아담하게 자리한 초가집은 ‘이름없는집’이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기 위해 성경이어쓰기를 하는 곳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정원에는 밀랍으로 만든 프란치스코 교황이 웃음을 띄고 서 있다.
▲정원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웃음 띤 밀랍 인형이 서 있다
 
이름없는 집
▲이름 없는 집
 
죽음으로신앙을증거한곳서산해미순교성지 1
 
죽음으로신앙을증거한곳서산해미순교성지 2
  
‘이름 없는 집’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성경책과 성경을 필사할 수 있는 노트 옆에는 메모된 글이 있다. 10분 정도 5절 이상을 겸허한 마음으로 필사하고 날짜와 필사한 이의 이름과 세례명(신명) 쓰기를 권하는 글이다. 펜을 잡고 쓰는데 손에 땀이 뱄다. 5절을 쓰는 동안 오른손 팔꿈치 접힌 부분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성경필사를 하는 사람
▲성경 필사를 하는 사람
 
죽음으로신앙을증거한곳서산해미순교성지 3
 
5절 이상을 쓰고 날짜와 내 이름 옆에 세례명 ‘엘리사벳’을 쓰고 나오니 막힌 숨이 터지는 것 같았다. 불과 10여 분 정도의 갑갑함도 이럴진대,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순교자들의 고통은 감히 짐작도 못할 일이다.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 길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 길
 
해미순교탑
▲해미순교탑
 
노천성당
▲노천성당
 
순교지에는 생매장을 한 ‘여숫골’과 ‘진둠벙’이 있다. 순교자들이 죽음의 길을 걸으며 기도할 때 ‘예수 마리아’라는 소리가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수머리’로 들렸기에 나중에 여숫골이라 부르게 된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진둠벙은 끌려오던 신자들 몸에 돌을 매달아 수장했던 연못으로, 외인들은 천주학 죄인들이 빠져죽은 둠벙이라 하여 '죄인둠벙'으로 불렸고 근래는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죽음으로신앙을증거한곳서산해미순교성지 4
▲성지 근처에 있는 관광홍보안내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해미순교성지.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해미’에 직접 와 보니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름 모를 신앙선조들의 희생으로 해미 시내 전역은 ‘기도의 땅’이 되었다.

해미순교성지
-주소: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전화: 041-688-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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