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생가지이자 천주교의 못자리라고 불리는 여사울 성지를 찾았다. 이곳은 충청도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파하는 일에 큰 영향력을 준 곳으로 순교자 23위의 신앙증거지로 알려져 있다. 여사울은 여기도 성루과 같다는 뜻으로 지어진 명칭으로 오래 전에는 서해 바닷물이 삽교천과 무한천을 따라 흐르며 배들이 왕래했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물고기와 새우젓을 파는 배들이 강을 따라 드나들며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풍부한 물을 사용하여 인근에 평야가 발달하여 삽교평야를 비롯한 쌀의 곡창지역으로 서울의 부유층들이 쌀을 사러 이곳에 오는 상인들도 있었다고 나이 드신 현지인이 전한다.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는 여사울 나룻터에서 배를 타고 한양에 드나들며 한양에서 권일신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주문보 신부를 국내로 영입하는데 큰 역할을 한 분이며, 신해박해 때 고문에 못 이겨 한때는 배교를 한 적도 있지만, 내포에 천주교의 복음의 씨앗을 전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정약종과 함께 1801년 42세의 나이에 황새바위 위에서 참수되어 순교함으로써 순교자가 되었다
이곳에는 성지순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당과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주 예수의 14처를 묵상하며 걸을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골고타 언덕을 향해 걸어간 주 예수의 고난의 시간을 함께 생각하며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십자가 길목에 있는 저 굴다리는 오래 전에 바닷물이 밀려 와서 한양으로 오가는 배가 드나들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배가 이곳으로 들어오면 나룻터 사람들이 밧줄을 받아서 큰 나무에 묶은 후에 배를 끌어 당겨서 나무에 배를 묶어 정박시켰다고 한다.
인류의 구원자로 불리는 주 예수도 십자가를 지며 고난의 길을 걸으며 기력이 떨어지고 넘어지셨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인생길에서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견디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서 묵묵히 걸어 갈 수 있는 신앙의 힘을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