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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보령 영보정의 절경에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도 반했다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던 충청수영성과 충남의 나폴리 오천항

2019.07.02(화) 17:09:19 | 인쵸리 (이메일주소:spfe1114@naver.com
               	spfe111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령 충청수영성은 오천면 소성리에 위치해 있는 조선시대 석성입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군서리, 군동리, 내웅리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수영성의 별칭이던 고소성의 이름을 따서 소성리라 하여 보령군 오천면에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서해를 통해 적이 침입하는 것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해 쌓은 성인데요,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 관광객을 반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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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 있는 오천항은 백제 때 중국, 일본과 교역을 하던 항구였는데 고려 때부터 왜구가 자주 침범해 군선을 두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객선만이 항구를 채우고 있습니다. 보령시 오천면 지역 도서와 태안군 안면도를 오가는 여객선 오천카훼리호는 하루에 두 번씩 오천항을 출발 월도, 육도, 허육도, 추도, 소도 등 5개 섬과 안면도의 영목, 원산도를 거쳐 오천항으로 돌아오는데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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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 입구에 보호수인지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두 그루가 붙을 듯이 자라고 있고 연인들은 그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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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입구인 홍예문을 통과해 올라가면 제일 먼저 충청수영 진휼청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있던 많은 건물 중 현재는 진휼청으로 추정되는 이곳과 객사, 삼문만이 남아 있습니다. 진휼청은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을 구제하던 곳으로 충청수영이 폐지된 이후에는 민가로 쓰이다가 1994년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충남 문화재자료 제412호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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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천수만 입구 바다 풍경이 수려하게 펼쳐지고 정박해 있는 각양각색의 배들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런 수려한 경관을 보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고, 배도 타고 서해안 해산물도 즐겼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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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정은 충청 제일의 천하명승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와 일본이 강화조약을 서두르는 등 어수선한 와중에 선조를 대신해 세자 광해군을 호남에 내려보내게 되었는데, 이때 충청도를 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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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송유진의 반란으로 홍주성에서 충청수영성으로 광해군의 거쳐를 옮기려던 찰나 이항복이 미리 다녀와 아뢰기를 가기가 마땅치 않다고 말했고, 의중을 묻자 세자가 영보정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방탕한 마음이 생길까 우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직접 영보정에 올라보니 그 뜻이 헤아려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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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원래의 경관을 잃었지만 자연지형과 경관이 남아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충남의 나폴리라 불리는 보령 오천항과 옛 정취에 취할 수 있는 충청수영성으로 자연과 역사를 느끼러 휴가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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