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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동학혁명군위령탑 앞에서 숙연해졌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의 최대 격전과 희생지, 충남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전투 터에 가다

2019.04.29(월) 21:56:55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는 5월11일(토)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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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위령탑으로 가기 전 계단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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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치 전적지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가 있었다. 대여섯 살 때 밖에서 놀다 들어와 심드렁해지면 괜히 엄마를 졸랐다. 잠투정이었던가. 잠이 올 듯 말 듯, 비올 때 날궂이하는 것처럼 뭔가 캥겨 칭얼대면 엄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르팍에 올렸다. 여름 한낮이면 엄마 손에 들린 부채바람을 타고 노래가락이 잠잠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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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돌탑이 서 있다. 각 돌탑 옆으로는 시멘트가 아닌 누런 황토담이 울타리처럼 둘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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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군위령탑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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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대였을까, 만져 보면 매끄럽다

왠지 구슬펐다. 그냥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나는 시나브로 낮잠에 빠졌다. 자장가로 들었던 그 노래가 동학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을 상징하며,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한 민요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이후 엄마의 노래는 더 이상 자장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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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우리나라 역사를 배울 때 국사 과목을 담당했던 선생님 한 분은 때때로 시대가 겪었던 일을 전해주면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시곤 하였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울분이 차서 선생님은 물론 수업을 듣던 우리들까지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특히 근대 직전의 조선 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지날 시점에는 우리는 이미 정서적으로 애국투사가 되어 당장에라도 교실 밖을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녹두장군은 전봉준을 상징한다. 녹두는 콩알보다 또 팥알보다 작다. 전봉준은 그만큼 키가 작았다. 하지만 그의 기개만큼은 일본인들도 작아지게 만들었다. 교과서에서 봤던, 전봉준이 일본군에게 붙잡혀 서울로 이송될 때의 꿋꿋하고 당당한 모습은 기억에도 또렷하다.

부활 2주일이었던 지난 4월 28일(일) 교회 예배를 올리고 소모임 회원 몇몇과 우리는 공주 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탑에 가보기로 했다. 한 회원이 언젠가 가봤을 때, 위령탑 주변이 풀이 우거지고 관리가 잘 안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주차장과 위령탑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탑 뒤의 둥그스름한 모양의 설치물은 아마도 봉화대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위령탑 근처의 나무들은 한 차례 비가 지나고 나서 그런지 푸른 기운이 감돈다. 연둣빛은 점점 진한 녹색빛으로 선명하다. 우직하게 서 있는 위령탑 좌우 양쪽의 돌탑에 바람이 휘 분다. 마치 어디선가 죽창을 든 동학농민혁명군들의 함성이 지나가는 것 같다.

동학혁명군위령탑’ 안내문의 내용에서는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 11월 11일 천도교산하 동학혁명위령탑 건립위원회에 의해 건립 됨>이라고 쓰여 있다. 또 <공주우금치 전적은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동학농민군의 최대, 최후 격전지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견준산을 중심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 387호)로 1994년 3월 17일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어 있음>이라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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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에는 인내천, 우금티를 넘어서 평화로~, 대동세상'이란 글이 펼침천으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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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을 지나 옆으로 난 언덕길을 오르면 탁 트인 너른 터가 나온다. 나무로 만든 각기 다른 장승들이 한 줄로 서 있고, 한 켠에는 설치물로 세웠던 것인지 모를 사람 형상의 ‘작품’이 길게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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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표가 있는 근처, 오솔길처럼 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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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나무장승에 새겨 있는 글들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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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형상으로 누워 있는 설치물. 처음엔 세워져 있지 않았을까

최대격전지에서 동학농민군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공주 우금치전투는 1894년 남북연합농민군이 공주감영을 점령하기 위해 관군 및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수차례 벌이며 패배한 곳이다. 그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을 걷다 보니 모두들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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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는 길,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기를 
 
고부 민란으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 오는 5월 11일(토)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각종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심의·의결되어 기념일로 제정되었다고 밝혔다.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을 기념일로 최종 선정됨에 따라 기념식을 개최하며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가 재인식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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