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공주 효자 향덕비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2019.04.22(월) 07:52:38 | 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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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ee0122@gmail.com)
공주는 예로부터 효의 도시라고 불리웁니다. 공주에는 효자로 이름난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서입니다. 공주시 소학동에는 신라 경덕왕대의 효자 향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가 있어 보름 뒤면 찾아올 어버이날을 맞이해 소개해보려 합니다.
사실 이곳을 따로 찾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공주에서 갑사나 신원사로 가는 길, 그렇지 않다면 공주의 유명한 중국음식점을 찾을 때 지나치게 되어 이곳을 들를 수 있을 따름이죠.
효자 향덕비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봄이 되어 이곳 주변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었습니다.
효자 향덕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죠? 어떤 일을 했기에 이런 비까지 세우고 칭송하는 걸까요? 755년(경덕왕 14)에 흉년이 들고 유행병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이때 향덕의 부모가 굶주리고 병들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종기 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향덕은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습니다.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에게 먹이고, 어머니의 종기가 난 곳을 빨아내어 편안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향덕의 효행이 경덕왕에게 알려지자 경덕왕은 향덕에게 벼 300곡과 집, 구분전 약간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 그의 효행을 크게 알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향덕의 효행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후기에까지 전승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741년(영조 17)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조영국이 찬한 ‘신라효자향덕정려비’가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각종 패륜범죄로 뉴스 보는 것조차도 힘들어진 요즘 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효자 향덕 이야기 어떠셨나요? 효자 향덕처럼 넓적다리를 베어 드릴 필요는 없겠지만, 부모님 댁에 전화 한 번 드리고 안부를 묻는 것부터가 효가 아닐까 합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의 그런 전화 한 통에 행복해지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