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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태극기가 희망으로 펄럭입니다!

국립공주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전을 둘러보다.

2019.03.13(수) 12:43:14 | 희망굴뚝 ‘友樂’ (이메일주소:coke4856@hanmail.net
               	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 국립공주박물관

지난 3월 1일(금),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전 '충남의 독립정신'이 열렸다. 대표적인 민족운동인 3.1만세운동의 양상을 살피고, 대표적인 충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충청남도 독립운동가 9인
▲ 대표적인 충청남도 독립운동가 9인

특별전에서 조명한 인물은 을사늑약의 무효 선언과 을사5적 처단을 주장하며 항일운동을 일으킨 면암 최익현(경기도 포천 출생/1900년 충남 청양으로 낙향),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 작성 및 서명을 한 지산 김복한(홍주 출생), 중국 상해 임시정부 초대 의장을 지낸 석오 이동녕(천안),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주도한 만해 한용운(홍성),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백야 김좌진(홍성), 천안 병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천안), 공주읍장만세를 주도한 유관순 열사의 친오빠 유우석(천안),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중국 홍커우공원 의거를 결행한 윤봉길(예산), 중국 충칭 임시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한 백범 김구(황해도 해주 출생/ 1898년 공주 마곡사에서 출가함) 9인이다. 이번 전시는 해방 이후 백범 선생이 충남의 독립운동가들을 추도 및 참배했던 일정을 재구성하는 여정으로 꾸며졌다. 전시자료를 참고로 9인과 관련된 행적 및 유물 등을 적는다.


1. 여정의 시작, 충남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서

여정의 시작-공주 공산성▲ 여정의 시작-공주 공산성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그해 11월 23일, 백범 선생은 고국을 떠난 지 27년 만에 귀국하여 1946년 봄부터 전국을 순례하였고, 4월부터는 충청남도를 순례하게 된다. 4월 22일 오후 3시경 공주에 도착하여 환영 행사를 마치고 공주 공산성에 오른 김구 선생은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이 공주 방문을 기념해 만든 '웅심각(雄心閣)'을 조국 광복을 기념하여 '광복루(光復樓)'로 고쳤다고 한다.
 

2. 【1부】 충남의 독립정신, '忠', '義'를 기리며

 고종 황제의 밀지와 면암 최익현이 사용하던 지팡이
▲ 고종 황제의 밀지와 면암 최익현이 사용하던 지팡이

4월 23일에는 韓末 유림 출신으로 위정척사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항일 의병장 지산(志山) 김복한과 면암(勉庵) 최익현을 참배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야욕이 노골화되자 고종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다 흑산도로 유배되었다가 1900년 충남 청양으로 낙향한 최익현에게 밀지를 보낸다. 밀지에는 조정에 올라와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3.【2부】 충남의 독립정신, 3.1운동을 기리며
 
김복한의 시문집 지산집
▲ 김복한의 시문집 지산집

1948년 11월 27일 백범 선생은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순국한 유관순 외 21명 열사의 기념비 제막에 참석했다. 그 외 충남의 대표적인 3.1운동은 김복한 등 유림이 주도한 파리장서운동도 있다고 한다. 파리장서 호서본 요약이 담긴 김복한의〈지산집〉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관순 열사의
▲ 유관순 열사의 유품인 '삼색 뜨개모자'

유관순 열사의 유일한 유품인 '삼색 뜨개 모자'가 전시되어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사촌인 '유경석'과 노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 '유제경'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손수 뜨개질한 것으로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독립선언서
▲ 독립선언서

충청남도의 3.1 운동 확대기
▲ 충청남도의 3.1 운동 확대기
 
충청남도의 3.1운동 양상과 특징도 살펴보자. 1919년 3월 1일 서울과 주요 도시에서 항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을 때, 충남에서는 독립선언서가 배부되지 않아 만세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3월 2일 논산과 부여에 독립선언서가 배부되면서 충남의 3.1운동은 급속하게 확산되어 4월 말까지 15개 군 88개 읍면, 195개 면, 256개의 리의 377개소에서 339회 이상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충남의 대표적인 시위 방법은 '봉화만세운동'이었음을 알았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인접지역과 연계하여 연합운동을 전개했으며 해안 지역에서는 등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밤에 횃불 또는 등불을 이용한 독립만세운동은 일본 순경과 전면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었고, 추후에 검거될 가능성도 적었다고 전한다.


4. 【3부】 충남의 독립정신, 다양한 항일투쟁과 통합

윤봉길 의사 유해 발굴 및 추모 행렬을 담은 사진 자료▲ 윤봉길 의사 유해 발굴 및 추모 행렬을 담은 사진 자료

1946년 4월 26일 저녁 무렵, 백범 선생은 예산 윤봉길 고택에 도착하여 유족을 만나 위로했다. 다음 날인 4월 27일에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추도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가나자와 교외의 미고우시 공병 작업장에서 순국하였다. 김구 선생은 일본 동경에 있는 박열 의사에게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이에 '대한순국열사유골봉환회'가 조직되었다고 한다. 1946년 서상한 발굴단장과 40여 명의 발굴단원이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5월 15일 국내로 봉환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홍커우공원 폭탄 의거 현장 영상 자료와 윤봉길 의사의 유해 봉환 과정을 담은 사진도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에 대한 부연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당시 가나자와 의대생이었던 '주정균'이 윤봉길 의사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2. 윤봉길 의사의 유해와 함께 발굴된 십자가형 목재 사형틀과 이를 추진한 발굴 대원들의 모습
3. 백범 김구 선생이 부산 공설운동장 추도식장에 도착해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도열해 의전 격식을 차리고 있다.
4. 초등학생들이 도열해 있다가 추모 행렬이 지나가자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는 장면. 당시 추모 행렬이 지나가는 거리 곳곳에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도열해 있었다고 한다.
5. 1946년 6월 15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순국선열 합동 추도식의 추모 행렬. 십자형틀을 든 남학생과 조화를 든 여학생을 필두로 부산 남녀 중학생 대표 400여 명이 선두에 섰다.
 
윤봉길 의사의 유품인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
▲ 윤봉길 의사의 유품인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
 
특별 전시장에는 자꾸만 눈이 가는 회중시계 한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 거사가 있던 날 김구 선생과 맞바꾼 회중시계로 순국 때까지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이라고 한다.

  김좌진
▲ 김좌진 약력서- 백야 장군이 1930년 1월 순국하자, 그해 3월에 거행된 사회장에서 낭독된 약력서이다.

윤봉길 의열 활동 외에도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벌인 김좌진, 일본의 불교 동화정책에 대항하고, 임시정부를 비밀리에 지원한 한용운, 약 20여 년 간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이동녕 등은 충청남도의 항일독립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5. 여정의 끝

마지막 여정은 공주 마곡사였다. 하룻밤을 보낸 백범 선생은 다음 날 무궁화 한 포기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고 마곡사를 떠났다. 무궁화는 2015년 서울로 옮겨졌고, 현재 마곡사에는 향나무만 남아 있다. 충청남도 순회를 마친 지 2년 후인 1948년, 돌연 김구 선생은 마곡사로 입산할 것을 발표했다고 한다. 비록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공주 마곡사는 선생의 번뇌와 해탈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49년, 백범은 총격으로 서거했고 마곡사는 김구의 사십구재를 봉행하였다. 해마다 마곡사에서는 원종 스님(백범의 법명)의 추모 다례재를 봉행하여 2019년 6월에는 서거 70주기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태극기 목판
▲ 태극기 목판

이번 기획전에서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제작하기 위해 태극과 4괘를 새긴 태극기 목판도 볼 수 있었다.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國旗로 반포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15일에는 태극기 제작법이 통일되었다고 한다.
 
태극기 제작을 하는 관람객들
▲ 태극기 제작을 하는 관람객

국립공주박물관은 특별기획전이 끝나는 4월 14일(일)까지 태극기 만들기 체험 행사를 이어나간다고 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전을 둘러보고 나오니 부모님 손잡고 스탬프를 이용하여 태극기를 만드는 꼬마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울에서 아들, 손자와 일부러 기획전을 보러 공주를 방문한 가족도 만났다. 꼬마들이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본 태극기, 할머니께서는 손자 손에 쥐여주려고 제작한 태극기를 보며 그 속에 어린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도 대대손손 이어지길 기획전 갈무리에 희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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