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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독립운동가 만공선사와 제자 원담스님

원담선사의 법어와 서예작품전

2018.08.16(목) 11:48:18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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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푸른 8월에 우리나라 8대 사찰 중의 하나인 수덕사로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수목으로 자연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근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쪄가지고 와서 파는 모습도 정겹고 아버지와 딸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덕사는 1930년경에 문학과 여성의 사회적지위 향상에 앞장섰던 일엽스님이 수행 정진한 곳으로 유명하다. 비구니 사찰로 알려진 이유도 일엽 본명 김원주가 주인공인 '여승의 노래'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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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일주문 앞에 도착하기 50m 좌측에 있는 수덕사 3대 방장 원담스님의 부도탑을 살펴보면 수덕사가 선의 사찰임을 알 수가 있다. 벽초스님을 은사로 만공스님을 계사로 수행하셨던 원담선사는 만공어록, 경허법어 등 서적을 출간 하셨고 수덕사 대웅전 현판을 직접 쓰셨다. 또한 스님은 일본 국제서도전에서 서예대상을 수상했으며 작품 13점은 덕숭총림 선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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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담스님은 또한 만공선사의 제자로 그의 증언에 의하면 만공선사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으로 서울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나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직접 목격하셨다고 전해진다. 만공은 또한 1937년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31 본산 주지회의에서 일제의 불교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우리나라 순수정통불교를 지키려 하셨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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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차령산맥의 줄기 덕숭산의 여름은 하늘을 찌를듯이 수목림으로 울창하다. 7부능선에 있는 정혜사는 수복림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만공의 숲으로 일컬어지는 이곳에는 만공탑을 비롯한 몇개의 문화재가 있다. 날씨 좋은날에 해발 495m 정상까지 등산코스로 올가가는 일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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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찰에나 가면 있음직한 일주문은 속계와 성계를 구분짓는 문으로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을 지나면 속세의 모든 번뇌를 잊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에 걸린 '덕숭산 수덕사' 현판은 호남 제일의 명필가 소전 손재형이 쓴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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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입구 좌측에 있는 수덕사 선미술관에서는 원담스님의 서예와 동양화의 거장 고암 이응노의 초기습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전도 열리고 있다.

독립운동가만공선사와제자원담스님 7▶원담 스님의 서예작품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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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시불모'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부처의 어머니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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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 이 세계는 하나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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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담 진성스님은 1926년 전북 옥구 출생이며 아명(兒名)은 김몽술(金夢述)이다. 1932년 신동우 선생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던 중, 장남인 형이 일찍 죽자 수명장수 기도 차 이모인 비구니 스님을 따라 절에 오게 되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승려 생활이 무척 고상하고 숭배하는 마음이 나서 집에 돌아와 부모를 졸라 출가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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