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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천주교 박해 성지 해미읍성을 가다

2018.07.05(목) 14:00:07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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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해안의 방어를 담당했던 석축산성, 서산 해미읍성은 사적지로 지정된 곳으로 이곳은 영장 즉, 해미읍성 병마절도사와 5군대 오영이 있었다. 1491년 성종 22년에 축조한 이곳은 충청 좌영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천주교 성지로 역사의 아픔의 흔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66년 병인박해 시에 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붙잡혀와서 고문을 받고 처형을 당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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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집정 당시에 체포된 천주교인들을 가두었던 감옥 터와 감옥 앞에 있는 300년 된 회화나무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천주을 부인하지 않았던 교인들의 믿음으로 순교성지로 지정되었고 믿음의 현장을 찾는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신자들을 돌위에 놓고 태질했던 자리개돌도 그대로 남아있다. 나뭇가지에 천주교인들의 머리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고 그 흔적으로 철삿줄이 박혀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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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내에 있는 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궐(闕) 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던 곳이다. 또한 익실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한 관원, 귀빈들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해미읍성 내에 있는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 겸 영장의 집무실로서 담당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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