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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옥계저수지 헌종대왕태실

2018.02.23(금) 13:58:02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옥계저수지헌종대왕태실 1

조선 24대 헌종 왕(1827~1849)의 태실이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가야산 기슭에 있다. 조선 시대에 왕가에서 왕세자가 태어나면 왕실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위해 태를 함부로 처리하지 않고 백자나 청자에 담아서 석상 안에 보관하던 것을 태실이라고 한다. 태실은 또한 명당자리를 찾아 명산에 보관하는데 그 산을 태봉산이라고 부른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왕실의 기를 쇠하려는 목적으로 이왕직을 시켜서 태실을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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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옥계저수지를 따라가다가 보면 헌종 왕 태실 이정표가 길가에 서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어느 가정집 앞을 지나 소나무 숲길 사이로 들어서면 하얀 밧줄로 헌종 왕 태실 있는 곳으로 가는 길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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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저수지를 끼고 들어서는 한적한 소나무 숲길의 좁은 길을 따라 100m 정도 걸어 가는데 올라갈수록 상당히 가파르다. 2015년도에 예산군에서 수중탐사를 하여 헌종 왕 태실 유물 중의 일부로 발견하여 옮겼다. 이곳은 또한 가야 9곡 녹색 길로 가는 이정표가 함께 있다.

옥계저수지헌종대왕태실 6

소나무 아래 낙엽이 있는 곳에는 햇빛과 소나무 그늘이 반사되어 태실에 가까이 갈수록 영험한 기운이 흐른다. 역사서에 기록되었던 헌종 왕 태실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나는데 신비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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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왕은 어린 나이에 왕으로 등극하였지만,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외척 풍양조씨 세력이 안동김씨 세력을 물리치고 한동안 세력을 잡았다. 조만영의 죽음으로 다시 안동김씨에게 넘어갔지만 삼정의 문란으로 국정이 혼란해지고 이양선 출몰로 행패가 심해 민심이 어수선했다고 전해진다. 헌종은 인물이 출중해 궁녀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해를 품은 달'의 드라마속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색을 밝혔음인지 22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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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왕은 1827년에 태어나서 8세의 어린 나이에 조선의 24대 왕위에 등극한 후에 가야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태본지를 단장했다. 1847년에 덕산에 헌종태실이 세워진 후에 덕산현은 덕산군으로 승격되었다. 태실의 주인공이 임금으로 등극하면 태실과 그 고장의 위상도 달라져 임금의 태실이 설치된 고을에는 등급을 한 단계 높여 주었다. 또한 임금의 위상에 걸맞은 격조높은 거북이 모양의 귀부석을 설치하였다. 헌종의 태실을 단장한 후에 이지연이가 주변의 산세를 그려 왕실에 보고한 태봉도가 실록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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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군에는 다섯군데의 태실이 있는데 대흥 동헌 뒤뜰에 영조 왕의 열한번째 화령옹주태실과 대술 궐곡리 숙종 왕자 태실, 신양 황계리에 현종 태실, 옥계저수지위에 헌종 태실이다.  태실은 아직 비지정 문화재로 되어 있지만 앞으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조선왕실의 염원이 담긴 태실을 유물로 지정하여 관광문화유적지로 재정비하는 일도 예산 관광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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