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계속되는 눈과 함께 이제는 한파가 몰아닥친다는 매서운 겨울 날씨 속 너나없이 명산과 명소를 찾아 사진을 담는 분주한 움직임에 제 마음도 설경을 놓칠까 급한 마음이 드네요.
멀리 가지 않아도 집 앞을 나서면 볼 수 있는 논과 밭 그리고 산이 있기에 오늘 조금은 부지런을 떨어보려 합니다.
집 앞을 나서는 순간부터 후회가 앞서지만 그보다도 짬을 내어 다녀오는 산책길이라 마음이 급해서인지 자꾸 미끄러지기 시작하네요. 눈발이 날려 저절로 눈이 감기고 신발 속으로는 차가운 눈이 들어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아까워 어떻게든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기도 하죠.
혼자 걷는 설중 산보가 참 엉뚱한 생각을 만들어 내네요.
원래 눈이 오면 감성스러운 자들과 어린이와 그리고 강아지만 좋아하지 복잡한 교통난에 그리고 재수가 없으면 부상도 각오해야 할 험한 날씨인 게 나이 들면서 느끼는 현실이에요.
흰 양탄자 위를 걷는 고상함과는 달리 평소 걷는 힘과 시간이 두 배는 더 지체되는 것 같습니다.
간간이 물줄기만 흐르던 냇물이 이 추위에 얼어붙어 있어요.
어린 시절 이런 풍경은 참 흔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 중의 하나가 됐죠.
무채색의 겨울 풍경은 쓸쓸함과 고상함의 극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저 멀리 배방산의 정상이 보여요.
이런 날씨에도 정상을 찍고 내려오시는 부지런한 그 누군가는 꼭대기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겠죠.
물아일체라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말인가 봐요.
산과 눈이 원래 한 몸인 양 너무나도 자연스레 하얗게 스며들고 있어요.
원공술 마을 쉼터 정자는 비와 해만 가려주는 역할을 하나 봐요.
굳이 눈을 피해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아직 보지 못했네요.
임자 없는 의자에는 함박 눈이 쌓이고 감성 자극하는 마른 풀잎들이 차가운 눈 위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있어요.
두 번이나 발이 빠지고 넘어지고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겪고 나니 등줄기에 땀이 솟는 것 같아요.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큰 웃음거리 될 뻔했어요.
등산객들만 지나다녔을 이 길은 적어도 10센티미터 넘게 눈이 쌓여있어요.
비교적 난코스로 예상되는 길이지만 그래도 상쾌한 아침 기운을 맞는 마음만큼은 개운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우리 동네 낚시터 모습이에요.
사람도 물고기도 그리고 자주 찾아오는 백로도 자취를 감추고
빈 좌석의 고요함 만이 낚시터를 지키고 있어요.
미국 동부의 최대 한파, 호주의 극심한 폭염 등 지구 곳곳에서 몸살을 앓게 하는 이상 기온 현상으로 우리나라도 곧 극강의 이상 기후에 대비해야 할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사계절을 안고 사는 대한민국이기에 겨울에 내리는 눈은 당연한 고운 손님인 것 같습니다.
넘어지고 미끄러져도 밉지가 않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