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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탈해사의 겨울

2018.01.06(토) 15:11:07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탈해사의겨울 1

찬바람을 벗 삼아 굽이굽이 가파른 길을 오르면 용굴산 해발 440m 8부 능선에 자리한 탈해사에 다다른다. 간간이 잔설이 쌓여있는 탈해사를 돌아 장수 턱거리 바위 앞에 서면 수철리 마을과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철 운동량이 부족해 심신이 나른해질 때 탈해사에 올라 턱거리바위를 올려다보면 무딘 정신이 화들짝 깨어난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저곳에 어떻게 작돌을 쌓을 수 있는지 놀랍다. 가파른 낭떠러지에 눈앞이 아찔할텐 데 저곳에 돌을 올려다 놓은 걸 보면 시공을 초월한 탁월한 정신력과 날렵한 운동신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탈해사의겨울 2
 
탈해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 용두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 중의 향천사의 부속암자다. 백제 의자왕 16년에 의각대사가 향천사를 창건하고 용비산 정기가 서린 이곳에 암자를 세워 수도 정진했다. 백제 의자왕 제위시에 장군이 충남 예산에서 고구려와 싸우다가 패전한 후에 이 곳으로 피신하여 갑옷을 벗고 수도를 하여 탈의사라고 전해진다.  

탈해사의겨울 3
탈해사 경내에 우뚝 선 미륵불상 아래에 현재 주지 스님 이종학 스님께서 비문에 쓴 '귀로' 시가 한겨울의 찬바람 속에서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탈해암을 멸운스님이 탈해사라 명명하고 중생교화에 노력하셨지만,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무관심 속에서 명맥만 유지했다. 그 이후 1975년에 이종학 스님께서 10여 년을 걸쳐 직접 지게로 불사에 필요한 자리를 운반하여 이곳의 절을 다시 복원하여 지게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탈해사의겨울 4

탈해사 경내 좌측에 공덕비와 범종각, 본채, 요사채, 그리고 부처님을 사이에 두고 좌측에 극락전과 우측에는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이 있다. 높은 벼랑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큰 불상이 서 있다. 몇년 전에 이곳에 우연히 올랐을 때 이종학 주님 스님을 뵙고 모든 것은 자연 속에 이치가 있고 북가의 운회란, 전생의 업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자손을 이어가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 새롭게 기억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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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사의겨울 6  
용굴산 혹은 용비산이라 불리는 이곳은 오래전에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장수턱걸이 바위는 용이 하늘로 승천할 기세라 하여 용머리 바위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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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사의겨울 8

탈해사가 있는 이 길을 따라 용굴산을 넘어 한두 시간 걸리는  금오산 향천사에 다다른다. 금오산 산행을 등산코스로 탈해사와 향천사를 잇는 길로 1300년전에 의각선사께서 이웃 향천사를 창건하고 금오산 명맥인 용비산의 용비봉 아래 머무시며 점지하셨다고 한다. 언제 날 좋은 날에 향천사가 있는 금오산 등반을 하기로 하고 급경사 내리막길을 운전하며 내려오는데 긴장을 하게 한다. 

탈해사의겨울 9
  탈해사의겨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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