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추사의 향기가 서린 화암사 병풍바위

2017.12.23(토) 12:48:19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1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고택 뒤에는 나즈막한 오석산 자락에 추사가문의 원찰인 화암사가 있다. 오랜만에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향기가 있는 화암사 병풍바위를 찾았다. 좁은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속세를 벗어난 한가로운 여유가 있는 조그만 암자에 다다른다.

조선말의 문인화인 동시에 조선의 북학을 집대성하하고 독보적인 추사체를 완성한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께서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하사받은 용궁리 일대의 토지에 추사 고택과 함께 세운 사찰이다. 추사는 수양을 위해 이 절에 자주 들렀고 1846년 제주 유배 생활 중에도 아우 김명희를 시켜 사찰을 중건하도록 지시한 흔적이 문헌에 남아있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2

화암사 입구 요사체에는 추사의 필체인 '원통보전' 편액이 걸려있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3

추사의 글씨 '추수루' 편액도 볼 수가 있다. 낙엽이 져버린 쓸쓸한 겨울바람 속에서도 200년 전의 문인학자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향기는 그의 삶과 글씨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4

화암사를 돌아 100m 정도 오솔길을 따라가면 큰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다. 추사 김정희는 24살에 동부지사로 청나라에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가 당대의 학자 옹방강과 완원을 만난다. 옹방강강은 당시 78세로 추사와 필담을 나눈 후에 동방의 젊은 추사 김정희의 학식에 깊이 감탄하며 동방에서 제일가는 학자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제자로 삼아 귀한 서적까지 주었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5

추사는 옹방강에게서 받은 육방 옹의 글씨 시경 탁본을 받고 고국에 돌아와 화암사 뒤에 있는 큰 병풍바위에 '시경'(時境) 글씨를 예서체롤 새겼다. 추사의 진경을 보여주는 작품 '시경' 즉 시의 경지라는 뜻으로 추사 선생님의 필적이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6

추사 김정희는 서로 다른 병풍바위에 천축 고생 댁(天竺古先生宅) 글자를 새겨넣었다. 청나라 옹방강 집에서 보았던 '천축고생댁' 즉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인 글귀를 가슴에 품고 고국에 돌아와 화암사 뒤에 있는 병풍바위에 유려한 필치 행서체로 새긴 것이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7

추운 한겨울에 병풍바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동백꽃 망울이 맺혀있다. 따스한 봄이 오면 추사가 추구한 열렬한 학문처럼 붉은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8
떡갈나무 잎사귀가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펼쳐져 걸을 때 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암자의 정적을 깨트린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9

228년 된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다.

 추사의향기가서린화암사병풍바위 10

 

 

 

 
 

 

도희님의 다른 기사 보기

[도희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