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면면히 대를 이어온 수당가의 선비정신

예산 대술면 이남규 고택

2017.11.10(금) 12:03:53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에 있는 후한 말 항일운동가로 알려진 수당 이남규 고택( 281호, 충남 유형문화재 68호)을 찾았다. 이 고택은 조선 시대 1637년에 건립된 고택으로 건립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이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분리된 전통가옥 구조로 건립되었다. 수당 고택은 아계 이산해의 손자 이구의 부인 전주이씨가 시아버지 묘를 관리하기 위해 1637년에 최초 건립하였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2

이산해의 며느리는 해마다 시아버지 시묘제를 지내러 이곳을 다니다가 어느날 양지바른 꽃에 눈부신 게 피어있는 찔레 더미를 보고 바로 이곳에 집을 짓고 시아버지 묘를 관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히게 되었다. 한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당 이남규(1855~1907)와 아들 이충구,신간회 핵심인사 이승구, 수당선생의 증손자 이장원 중위 등 4대 충절인물을 배출한 집안으로 역사적 의의가 담긴 고택이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3

'평원정' 이라 불리는 사랑채는 일자형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당시 손님을 접대하고 공부를 하는 서당으로 사용했다. 옛 모습 그대로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이 가옥에는 현재 이남규 고택은 후손인 이문원께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의 전형적인 반가의 모습을 지닌 이 고택은 1800년도에 보수를 했고 문살이나 건축 구조가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결한 기품을 지닌 마치 전주이씨 며느리의 당찬 여걸의 모습이 상상된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4 
1893년 일본의 조선 내정간섭과 1895년 명성 시해 사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등으로 나라 안팎이 혼란을 겪는 혼란의 시대였다. 수당 이남규는 문과에 급제한 후에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일제의 토벌을 주장했다. 이후 충남 지역에서 이어난 민종식 의병 활동을 돕게 되어 민종식을 집에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집에 들이닥쳤다. 1907년에 선생을 붙잡으려고 온 헌병에게 선생은 (士可殺不家辱) '선비는 죽일 수는 있으되 욕보일 수는 없다' 하며 스스로 가마에 올랐다. 아산 외암리 냇가에 이르러 일본군은 선생과 아들 이충구, 가마꾼 김응길을 살해했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5 
현충원에 4대가 나란히 안장된 유일한 수당 이남규 선생의 가문. 1대 수당 이남규 선생은 고려말의 충신이자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후손, 단채 신채호의 스승이었다. 2대는 아버지와 함께 피살된 아들 이충구 그리고 3대는 일제강점기에 국내외에서 독립활동을 했던 이승복. 수당 이남규 선생과 그의 아버지 이충구가 일제의 총칼에 붙잡혀 갈 때 나이는 13세였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6

조부모의 영향을 받은 이승복 선생은 항일단체 신간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하였다. 4대는 6.25전쟁 동안 인천상륙작전과 원산 상륙작전 수행에 큰 도움을 준 북한군과의 대치에서 적탄에 의해 전사했다. 1855~1951년 동안 약 100년간 국난의 시대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온 수당 이남규 가문이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7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8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9

안채는 방과 대청으로 구성되고 ㄷ자형 구조로 정면 7칸 측면 6칸이다. 신기하게도 이 집은 왼쪽에도 마루방과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도 부엌과 방이 있다. 이 집을 지을 당시에 시어머니께서 며느리를 생각하여 오른쪽 부엌과 방은 은 시어머니가 관리하고 왼쪽 부엌과 방은 며느리가 관리하며 따로 분리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배려가 담긴 가옥 구조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0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1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 입구에는 불 지피는 아궁이가 있어 오랜 세월동안 그으름이 서린 천장의 들보는 까맣게 거슬려있다. 이 그을음이 자연방수제 역할을 하여 습기를 막아 목재건축물을 보호한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2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3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4

이곳에 있는 기념관을 둘러보면 이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들과 고문서들로 조선 후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5 
인걸은 없는데 300년 된 탱자나무에는 해마다 노란 탱자가 달리고 있다.
 
면면히대를이어온수당가의선비정신 16 
이남규 고택 뜰 안에 있는 해우소가 정원에 어울려 평화롭다.
 
 










 

 

도희님의 다른 기사 보기

[도희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